◇종로상회 분당 서현점을 운영중인 이상철-강춘옥씨 부부. 2011년 전업을 결정할 당시 강씨의 반대가 심했지만 1년여 시간이 흐르면서 매출은 안정세에 접어들었고 주말에 하루 쉬는 등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의술은 발달하고.
옛부터 '인생은 60부터'라고 했지만 요즘엔 일흔이라고 해도 '노인' 소리 듣고싶지 않은 세상이 됐다. 하지만 '경제활동 수명'은 오히려 짧아지고 불황은 여전하다. 너도나도 창업붐이지만 취업에서 창업으로 무대가 바뀌어도 나이는 걸림돌이다. 50세 이후엔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황혼 창업'은 부업이 아니라면 인생에 있어 '올인'이다.
1960~70년대 복고풍 고기주점인 종로상회 분당서현점을 운영중인 이상철씨(56)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2011년 9월 이씨는 고민에 빠졌다. 11년 넘게 감자탕집 운영으로 슬하 남매를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손님이 꽤 많았다. 24시간 영업을 하면서도 장사가 나름대로 되니 큰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아쉬운 '창업 카피캣'. 어느 가게가 잘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모방 아이템을 들고 바로 코앞에 자리를 튼다. 그해 이씨의 감자탕집보다 규모가 세 배나 큰 감자탕집이 인근에 들어섰다. 보통 식당은 매장 면적이 세배 차이 나면 매출은 아홉배 차이가 난다는 말이 있다. 경쟁 감자탕집은 손님을 싹쓸이 해갔다. 살 길이 필요했다. 본격적인 전업 고민의 시작이었다.
국산 돼지 고기가 주 메뉴인 종로상회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추억을 되살리는 인테리어로 매장이 꾸며져 있다. 나름 독특한 분위기가 장점이라고 봤다. 막상 전업을 하려했지만 부인 강춘옥씨는 극구 반대했다.
이씨는 "인테리어를 바꾼 지가 1년밖에 되지 않았죠. 또 전업하면 내부 수리 비용이 수천만원 들 것이고, 50대에 또다른 도전을 해 망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며 냉담했죠"라며 그때를 떠올린다. 밀어붙이는 남편에게 결국 백기를 든 부인은 종로상회 본사를 찾아가 직원들에게 "이번 사업이 잘 안되면 우린 이혼할 수밖에 없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개업을 준비하면서 복병도 있었다. 부인 강씨가 몸져 누운 것이다. 강씨는 몇 년전 기흉으로 수술을 했는데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자 재발했다. 강씨는 또 수술을 했고, 새 가게는 오픈을 맞았다. 이씨는 개업 첫날 물밀듯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고서야 안심이 됐고,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낭보'를 전했다.
경북 고령출신인 이씨는 23세때부터 이런 저런 자영업을 했다. 신발 대리점도 했고,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의류 장사도 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였지만 이번 만큼은 쉽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소심해지는 내 자신을 보게됐죠. 그래도 겁먹지 말자고 생각했고, 가족을 떠올리며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개업 이후 1년 9개월이 흘렀다. 매출은 뛰었고, 지금은 안정됐다. 감자탕 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7배 수준이다. 월 매출이 4500만원 안팎이다. 이씨는 "이제 단골손님도 생기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사람 구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몇 년전 내국인 일자리 확충을 위해 중국 동포(조선족)의 취업비자 통과가 다소 까다로워졌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인건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라고 말한다.
조선족 종업원은 1주일에 6일을 일하고 190만원 정도를 받아간다. 주방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경우 220만원까지 월급이 치솟는다. 급기야 직장을 다니던 아들이 가게를 돕고 있다.
가족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이씨의 건강이다. 쉼없이 달려오다보니 몸이 불편한 곳이 있어도 내색을 않는다. 요즘도 오전 8시에 가게에 출근, 문을 열 준비를 한다. 밤 11시 30분까지 일을 하고난 뒤 돌아가면 자기 바쁘다. 이씨는 "그래도 행복하다.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도 들고 노력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건강검진을 미뤘는데 조만간 병원을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
포부랄 것도 없다. 수입이 조금씩 늘면서 종로상회로 전업하느라 빌린 돈은 최근 다 갚은 상태다.
"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행복해 하시고, 가족들 건강하고, 이렇게 웃을 수 있는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박재호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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