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여행의 테마로 고궁 나들이가 제격이다. 문화유적답사에 역사기행, 계절의 변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궁궐이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 자리한 창덕궁은 과연 세계문화유산으로 불릴 법한 명소다.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담아낸 조경미란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에 다름없다. 사진은 부용지 전경.
추석 연휴,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기행 어때요?
선선한 가을,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때다. 마침 주말부터는 추석연휴에 돌입한다. 하지만 전국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을 때라 어디 멀리 떠난다는 것도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이럴 땐 집근처 여행, 도심 속 나들이가 실속 있다. 차례 상을 물리고 떠날 만한 곳으로는 고궁나들이도 괜찮다. 조선의 궁궐에는 다양한 테마가 응축되어 있다. 웅장한 고건축미며 자연미를 담은 옛조경문화, 그리고 교과서와 드라마 속에서 배웠던 역사속 주인공들의 체취 또한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이 같은 요소를 두루 갖춘 고궁으로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昌德宮)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달빛기행'으로 더 잘 알려진 창덕궁은 모처럼 도심 속에서 여유를 느끼며 '자연과 역사'에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여행지에 다름없다. 글·사진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1405년(태종 5) 경복궁의 이궁으로 세워진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버린 이후 사실상의 '정궁(正宮)' 역할을 해왔다. 특히 1610년 광해군 때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이 거처했던 곳이다.
후원인 금원(禁苑)을 비롯해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다.
특히 창덕궁은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을 잘 보여 주는 궁궐로 자연 지형을 살린 건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창덕궁의 상징격인 인정전과 인정문, 국사를 논의하던 선정전과 희정당, 자연과 인공미가 조화를 이룬 후원, 조선 시대 정원을 대표하는 부용지, 선비의 단아함을 닮은 애련지와 존덕정, 백성들의 삶을 체험했던 옥류천 등 궁궐 곳곳에 보석 같은 유산을 거느리고 있다.
▶조선 왕실의 위엄을 간직한 창덕궁
창덕궁 관람에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우선 돈화문부터 인정전, 대조전, 낙선재 등 궁궐 지역을 관람하는 일반 관람 코스와 후원 지역만 따로 둘러보는 특별 관람 코스가 그것이다. 일반 관람 코스는 자유 관람과 해설사 동행 관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부용지, 애련지, 옥류천 등 후원 지역 탐방의 경우 특별 관람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과 안내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잘 실천한 궁궐이다. 때문에 정문에서 조차 정전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이 한결 같이 자연 지형과 공간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이다.
창덕궁은 임금이 공식 업무를 처리하던 외전과 왕과 그 가족이 살았던 내전으로 나뉜다. 창덕궁의 경우 외전은 돈화문에서 시작해 금천교, 진선문, 인정문과 인정전, 선정전과 희정당을 이른다. 그중 인정문과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으로 인정문의 앞마당은 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 또한 자연환경을 활용한 건축기법 탓이다.
인정문 안쪽에는 창덕궁의 상징격인 인정전(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왕의 즉위식은 믈론 외국 사신을 맞는 등 국가의 공식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경복궁의 근정전보다는 작지만 아름다운 천장의 문양 등 예술적 가치가 빼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인정전은 세 차례의 화마를 입은 결과 지금의 모습은 1804년의 건축물이다.
인정전을 지나면 국사를 논의하던 선정전과 희정당이 나선다. 선정전은 임금과 신하가 머리를 맞대던 편전이다.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청색 기와지붕으로 임금의 권위를 담았다. 이후 왕의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으로 사용되며 선정전은 선왕들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희정당 뒤편에는 외부와 단절된 내실, 대조전(大造殿)이 자리하고 있다. 대조전은 임금의 침실이자 왕손이 나고 자란 곳이다. 따라서 건물의 이름에도 '크게 만든다(大造)'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왕위를 잇는 세자를 큰 그릇으로 만들어야 나라와 백성이 만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조전은 한 맺힌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여러 차례 화마를 입었던 이곳은 우리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한일합병이 결정된 장소이다. 한일합병은 1910년의 마지막 어전 회의에서 결정 되었고, 519년 역사의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궁궐 동쪽 끝에는 후궁들의 거처 낙선재가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황태자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던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 영친왕과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가 말년까지 살던 곳이다,
이 밖에도 창덕궁에는 왕세자가 머물던 성정각, 왕세자의 서고와 도서실이었던 승화루,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을 담아낸 아름다운 왕실정원 '후원'
비원(秘苑)으로 더 잘 알려진 후원은 자연 지형과 경관을 적절하게 활용한 궁궐로 창덕궁의 가치를 곧잘 담아내는 공간이다. 창덕궁 북쪽에 자리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임금과 그의 가족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했던 곳이자 때로는 과거시험장, 연회장, 사냥터 등으로도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후원은 나지막한 언덕과 계곡, 울창한 숲을 잘 활용하여 건축물을 세우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해 조경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낙선재와 성정각 사이로 이어진 언덕길을 넘어서면 창덕궁 후원을 대표하는 부용지 구역이 나선다. 언덕 아래 널찍한 연못과 그 주변에 아름다운 건축물이 지리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 듯 풍광이 빼어나다.
부용지 연못에는 기품 있는 소나무가 뿌리내린 둥그런 섬이 있다. 연못에 기둥을 드리운 부용정은 왕과 세자가 독서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부용지 언덕에 자리한 2층 누각 주합루가 이 구역의 대표 건축물이다. 정조 때 지은 주합루의 1층은 왕실 도서관 규장각이다. 2층은 우주의 모든 이치가 합하여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곳이란 의미로 '주합루'라 불렸는데, 학자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던 장소다. 인재를 아끼는 정조의 각별한 마음이 반영된 공간이다. 부용지 한쪽에 자리한 영화당 앞마당에서는 별시(비정기적으로 치른 특별 과거 시험)를 치렀다.
부용지 북쪽에는 또 다른 연못 애련지가 있다. 숙종 때 지어진 곳으로 연꽃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단아한 애련정이 함께 들어서 있다. 인근에는 순조가 손님맞이 장소로 사용했던 120칸 연경당이 기품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애련지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가면 존덕정 구역이 나타난다.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아름다운 연못과 존덕정, 폄우사, 승재정 등 건축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2중 지붕에 육각형 모양의 존덕정은 왕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존덕정 북쪽에는 옥류천이 자리하고 있다. 왕이 농사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애민사상이 담긴 공간이다. 인조때 지은 것으로,소요암이라는 바위에 작은 폭포를 만든 후 인조의 친필을 새겼다. 주변에는 소요정, 취한정,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등 아담한 정자가 여러 개 있다. 창덕궁 건축물 중 유일한 초가지붕인 청의정 앞에는 작은 논이 있다. 왕이 농사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즈음 창덕궁에는 하루가 다르게 가을빛이 내려앉고 있다. 수백 년 수령의 도토리나무들은 다투어 다람쥐의 겨울양식, 도토리를 털어내고 있다. 이 가을 창경궁에 가면 잘 생긴 '순 조선산' 도토리를 만날 수 있다.
▶창덕궁 등재 가치
◇등재연도=1997년
◇등재 가치=유교 예제와 풍수양식에 따르는 궁궐 건축양식을 보이면서도 자연 친화적 창의성을 담아낸 곳이다. 아울러 건축과 조경을 하나의 환경적 전체로 통일시킨 좋은 사례가 된다. 또한 후원인 금원(禁苑)을 비롯해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산시 단원구 어르신 & 어린이, 행복한 창덕궁 나들이
지역의 할아버지-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1·3 세대 간 동행 여행 프로그램,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덕주)과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협회장 이호경)가 공동 실시하는 '함께 만나는 UNESCO 세계문화유산탐방' 이벤트(Let's Go 한국세계문화유산탐방) 그 네 번째 행사가 지난 9월 10일 조선시대 대표적 왕궁인 창덕궁에서 펼쳐졌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노인종합복지관(관장 최성우) 어르신 16명과 안산시 군자어린이집 원아 15명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 탐방을 위해 창덕궁을 찾은 것.
한국문화유산탐방사업을 마련한 GKL사회공헌재단 정성대 사무국장은 "핵가족화로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만나기 어려운 시절에 어르신은 선배로서, 아이들은 후배로 두 세대가 함께 우리 문화를 만나고, 소통하는 뜻 깊은 사업에 지원을 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창덕궁의 초가을 정취 속에 어르신은 마을 아이들의 어르신이자 훈장 선생님으로, 아이들은 손자이자 학생으로 오순도순 탐방 대열에 동참했다. 어르신과 아이들은 손을 꼭 맞잡고 후원 곳곳을 누비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 문화를 보고, 듣고, 배우며 소중한 탐방 시간을 가졌다.
금번 창덕궁 세계문화유산탐방에 참여한 손재숙 어르신은 "오랜만에 창덕궁을 방문했는데, 특히 이번에는 우리 마을 아이들과 찾게 되어 더욱 좋았다"면서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고, 더불어 전해주고 싶은 여러 이야기와 삶의 지혜까지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었다"고 탐방 소감을 밝혔다.
의견이 0개가 있습니다.
숫자 및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