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
모처럼 겨울다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어 반갑다. 식도락 기행에 나서는 입장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결코 달갑지 않다. 국민생선 '명태'의 실종 등 우리 밥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유독 더 맛있는 별밋거리가 있다. 바로 숭어다. 생선도 맛이 차는 제철이 있는데, 봄은 도다리, 광어, 꽃게, 여름엔 민어와 병어만한 게 없다. 또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이라고들 하고, 겨울철은 농어가 맛나다. 하지만 갯가사람들은 농어 보다 겨울 숭어를 더 쳐준다. 초겨울 어린 숭어를 '모치', 한겨울엔 '동어'라 부르며 회중의 으뜸으로 친다.
숭어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제 맛을 낸다. 숭어는 뻘속의 플랑크톤, 새우, 갯지렁이들을 먹고 사는데, 산란기를 즈음한 겨울시즌 먹이활동을 중단한다. 따라서 특유의 냄새와 쓴맛이 사라져 겨울철 횟감으로 제격이다. 겨울 숭어는 육질이 하도 쫄깃거려서 회맛을 좀 아는 사람들은 "다금바리 부럽지 않다"고 쳐줄 정도다.
씹을수록 쫄깃 달보드레한 '겨울 숭어'가 제철을 만났다. 요즘 전북 부안, 충남 서천 등 서해안 일원에서는 숭어 잡이가 한창이다. 부안에서는 올겨울 아예 숭어축제도 벌였을 만큼 겨울철 지역의 대표 별미로 통한다.
본래 숭어는 해수와 담수가 섞인 연안의 뻘 지형 바다에서 서식한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을 지닌 부안, 서천 앞바다에 숭어 떼가 몰려든다. 새만금 유역 부안 일원은 만경강, 동진강 등 서해로 흘러드는 담수와 바다가 만나 천혜의 어장을 형성한다. 서천지역의 황금어장으로 통하는 월하성 앞바다도 금강하구가 가까운데다 뻘밭이 기름져 사철 어패류가 넘쳐나는 곳이다. 특히 부안 숭어는 위도 인근 먼 바다 깊은 해역까지 활동 반경이 넓어 육질이 탄력 있고, 특유의 흙내도 나지 않는다는 게 부안 사람들의 자랑이다.
숭어는 예로부터 최고의 별미와 보신어종으로 분류됐다. '자산어보'에는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제일이다"라고 적고 있다.
'향약집성방'에도 숭어를 '수어(水魚)'라 지칭하며 "숭어를 먹으면 위를 편하게 하고 오장을 다스리며, 오래 먹으면 몸에 살이 붙고 튼튼해진다. 이 물고기는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百藥)에 어울린다"고 소개해두었다.
파이팅 넘치는 숭어는 힘이 좋다. 때문에 몸도 민첩하고 그물 속에 들었다 해도 곧잘 뛰쳐나간다. 따라서 그만큼 육질도 쫄깃하다. 오죽하면 '숭어 앉았다 떠난 자리 개흙만 먹어도 달다'는 말이 다 있었을까.
겨울철 최고의 횟감이라는 숭어,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서해안 포구사람들은 '묵은지'에 싸먹을 것을 권한다. 숭어회는 쫄깃 거리고 묵은 김치는 아삭거리고, 둘이서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쫄깃 고소한 육질과 묵은지 특유의 간간하고도 깊은 미각의 어우러짐에 연신 입 안 가득 침이고 인다. 특히 묵은지는 생선 비린내나 특유의 개 흙내조차도 잡아낼 수 있어 평소 회감을 즐기지 않는 경우라도 쉽게 넘길 수 있게 한다.
회맛을 제대로 보려거든 두툼하게 썰어 먹는 게 낫다. 찰지고 탄력 있는 숭어 한 점을 간장만 살짝 찍어 오물거리면 특유의 달보드레한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여느 횟감과는 비교 안 될 탄력, 줄돔이나 다금바리 사촌 '능성어' 못지않은 쫄깃함이다.
숭어는 버릴 게 별로 없다. 살짝 데친 껍질은 고소하고 쫄깃하다. 내장 중 위는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별미다. 어란은 최고의 별식이자 고급 안주감으로 통한다. 또한 숭어도 여느 물고기처럼 뱃살부위가 맛나다. 하지만 큼직한 머리는 살이 없다. 어두육미의 대표 격인 도미와는 반대다. '고양이가 숭어 머리를 훔쳐 갔다가 하품만 했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다.
숭어는 횟감 말고도 찜, 소금구이, 전, 탕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특히 작은 숭어의 경우 은박지에 싸고 구워서 간장에 찍어 먹으면 맛나다.
숭어는 부안에서는 군청앞 상설시장, 격포, 곰소항, 서천에서는 월하성 마을이나 홍원항 주변 등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싱싱한 숭어회 한 접시(2~3인분)에 1만 5000원 정도 한다니 시원한 물매기탕과 생굴 한 접시를 곁들여도 큰 부담 없이 서해의 겨울 미각에 빠져들 수 있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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