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농악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꼽힌다. 전남 보성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본향으로, 겨울철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초록의 차밭과 황홀한 낙조 등 겨울바다의 낭만에도 푹 젖어들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은 보성판소리성지를 찾은 관광객들의 판소리 체험 모습.<사진=보성군청 제공>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22일)이다. 겨울의 초입, 이맘때 여행지로 선뜻 떠오르는 곳이 있다. 전라남도 보성이다. 대한민국 대표 차(茶)문화 고장은 사방이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겨울에 초록의 생동감과 순백의 낭만을 함께 맛볼 수 있어 더 빛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 위로 하얀 함박눈이라도 살포시 내려앉으면 눈 덮인 겨울 녹차 밭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짭짤한 겨울 별미 '꼬막'에 낙조 감상과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뜨끈한 해수탕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만한 겨울여행지가 또 없다.
그 뿐인가. 보성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본향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 감정이 녹아내린 판소리는 예술적 감흥 속에 '소통'을 담아내는 보편적인 민족예술이다. 그중 보성의 판소리는 겨울 꼬막처럼 쫄깃하면서도 오묘한 게, 적당히 간이 밴 인간사의 묘미가 잘 담겨 있다는 평이다. 초겨울 전남 보성을 찾으면 운치 있는 계절의 낭만에 미식, 세계적인 유산 판소리까지 체험할 수 있으니 흡족한 전통문화유산기행지로 제격이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편적인 민족예술 '판소리'
판소리는 농악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꼽힌다. 농악이 우리 전통 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마을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등 공동체의 바람을 담아내는 집단 공연이라면, 판소리는 소리꾼에 의해 다양한 인간 경험과 생각, 감정 등 희로애락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이다. 이 과정에서 소리꾼은 자신의 내공을 통해 청중에게 다양한 메시지와 예술적 체험을 전달한다. 창과 아니리, 비장과 해학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청중을 사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판소리를 통해 기쁨과 슬픔, 장중미와 비장미, 온유, 강건함 등 다양한 감정의 변이와 이입을 경험하며 예술적 감흥에 취하게 된다.
이처럼 판소리는 청중이 모인 곳에서 부채를 손에 쥔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춰 노래(창), 말(아니리),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서사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연예술이다. '판소리'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특히 '판'은 놀이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을 뜻하는데, '씨름판', '난장판', '먹자판', '놀이판' 등이 그 사례다. 아울러 '소리'는 우리 민속악의 성악(聲樂) 예술을 뜻한다.
판소리는 17세기 후반 서민층을 기반으로 한 민속예술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 서남지방의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후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중인-양반층 까지 전파되며 명실 공히 대중민족예술로 거듭났다. 따라서 내용 또한 더욱 포괄적으로 진화 발전하였다. 당대의 구체적인 사회 현실과 일상을 반영한 사설이 추가 되었는가 하면 음악 또한 더 풍성해지며 질적 양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19세기 말에는 문학적 내용으로 더욱 세련되어지며 지식인 사이에도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판소리는 시대적 정서와 가치를 나타내는 전통예술이다. 따라서 삶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며 청중도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그 내용은 다분히 충, 효, 정절, 의리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이 압도적이다. 물론 판소리 열두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숙영낭자전) 등 그 수가 많았지만, 현실성 없는 소재와 내용 보다는 시대정신을 담은 것들이 더욱 정제 되며 체계적으로 전승되었다.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마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판소리의 또 다른 키워드는 소통이다.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양반, 평민 모두가 즐기는 예술장르로 서로의 생각을 가늠-조절할 수 있는 통합의 기능도 담당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아울러 다양한 전통 예술로부터 필요한 것을 수용하고 이를 종합하는 개방성 또한 지녔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표현을 통한 민족문화 전통의 계승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판소리는 2003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판소리가 지닌 음악이나 사설 이상으로, 사회문화적 의미와 가치 또한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농악이 농경사회 공동체 생활의 구심점이 된 것처럼 판소리가 민중의 삶의 가치와 소통 등 우리 문화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돼주었다는 점도 주효했다.
한편 판소리는 소리꾼의 역할이 지대하다. 따라서 소리꾼은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는 한편 복잡다단한 사설을 모두 암기해야만 했다. 때문에 장기간의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판소리는 한반도의 서남지방, 전라도와 충청도, 경기도에 전승되었다. 이들 지역 마다 창법이 달라, 그 특징에 따라 '소리제(창제)'를 달리하고 있다. '동편제(東便制)'는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를 이르며, '서편제(西便制)'는 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를,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른다.
동편제는 발성이 무겁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는 등 굵고 웅장하다. 씩씩한 가락, 우조(羽調)를 많이 쓴다. 기교와 수식이 적은 창법으로 사설이 빈틈없이 진행되고 템포가 빨라 발림이 적다.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지역인 남원, 순창, 곡성, 구례 등지에서 전승된 소리로 가왕(모든 歌調를 집대성하여 판소리를 완성)으로 일컬어지는 남원 운봉출신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서편제는 발성을 가볍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는 등 정교하다. 따라서 기교와 수식이 많다. 템포가 느리고 대신 발림도 풍부하다. 구슬픈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쓴다. 따라서 서편제에서는 연기를 하는 듯 한 연행적 성격이 더 발달했다. 서편제는 섬진강의 서쪽 지역인 광주, 나주, 담양, 화순, 보성 등지에서 전승된 소리로, 순창출신으로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중고제는 동편제 소리에 더 가까우며 소박한 시김새(판소리에서 발성의 기교를 활용해 멋을 부리는 기예 능력)로 짜여 있어 성량이 풍부한 소리꾼이 부르기에 좋다. 중고제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에 전승된 소리로, 송흥록과 동시대 사람인 강경출신 김성옥으로부터 출발되었다.
▶보성의 판소리
박유전-정재근-정응민으로 전승되는 유파. 이름 하여 '강산제(江山制)'라고 한다. 박유전은 대마디 대장단의 밋밋한 우조 위주 '동편제'를 보완해 계면조가 많고 붙임새가 정교한 '서편제'를 만들어낸 다음 다시 말년에 그때까지 전승되던 판소리를 정교하게 개편하여 새로운 판소리로 창작했다. 이것이 강산제 판소리다. 그러나 박유전의 소리는 보성의 정씨 문중에 전승되고 있는 소리와는 차별성이 있다. 서편제의 토양 위에 동편제와 중고제의 좋은 특징이 접목되어 새롭게 형성된 판소리 유파라고 볼 수 있다. 보성소리의 중요무형문화재로는 조상현, 성창순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수많은 명창을 배출하였다. 따라서 보성에서 전승되어온 소리일반을 지칭할 때는 '보성소리'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보성판소리성지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는 보성판소리의 메카 '보성 판소리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명창이자 서편제 창시자인 강산 박유전 명창을 비롯해 정재근·정응민·조상현 선생 등 서편제 계보를 이은 명창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판소리 산실인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일원을 주 무대로 박유전 선생 기념비, 정응민 선생 생가, 득음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보성 소리의 살아있는 신화 박유전 명창은 동편제의 고장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1852년 이곳 보성 강산마을로 이주해 서편제를 창시했다. 이후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킨 강산제도 만들었다. 30명 이상 단체의 경우 명창의 판소리·민요 등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보성 소리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조성된 공간에서는 판소리 체험교실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 휴무.(061)852-5206
◆광주 북구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과 문화초등학교 아동, "Let's Go!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판소리' 보성지역 탐방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덕주)이 후원하는 'GKL 사회공헌재단과 함께 만나는 UNESCO 세계무형유산 탐방 7''판소리'편이 지난달 14~15일 1박2일의 일정으로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판소리성지와 보성군 일원에서 진행됐다.
광주 북구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과 문화초등학교 아동 등 30명이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세계유산 중 하나인 '판소리'를 체험-관람하기 위해 전남 보성군으로 무형문화유산 탐방에 나선 것. '함께 걷는 길, 행복한 우리'라는 주제로 실시된 금번 탐방 프로그램은 1·3세대가 함께하여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하고 노인과 아동-청소년의 세대 간 교류 확장을 통한 '세대공감'을 이끌어내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본격 세계인류무형문화탐방에 앞서 어르신과 아동은 사전모임으로 친밀감 형성을 위한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인 판소리에 대해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배움의 시간도 가졌다.
본격 유네스코 무형유산탐방은 '제19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기간에 이뤄졌다. 보성판소리전수관에서 판소리 공연 관람과 체험 후 강사와 함께 판소리 성지를 방문해서 보성판소리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숙소(보성청소년수련원)에서는 천문체험과 3D투영을 통해 별자리를 관측했고 유네스코 문화탐방 골든벨시간도 가졌다. 탐방단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즐거워했고, 골든 벨 타임 또한 적극적이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금번 유네스코 문화유산탐방 2일차에는 녹차밭(대한다원), 공룡유적지, 태백산맥문학관, 고인돌유적지 등 보성지역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둘러보았다.
이번 유네스코 무형유산탐방에 나선 한 어르신은 "판소리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줄은 몰랐는데 행사에 참여하면서 다른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서 "우리가락과 판소리를 보성현지에서 직접체험해보니 더없이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탐방단의 조미순 어르신은 "아이들과 함께 보성판소리를 체험하고 푸른 녹차밭과 삼나무 숲을 걸으니 더욱 즐거웠다"면서 "어른들만 왔다면 이렇게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흡족해했다.
문화초등학교 5학년 김태윤 학생도 "이번 세계무형유산 탐방 참석 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하실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많이 챙겨 주시고, 즐겁게 놀아 주셔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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