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타령축제 거리 퍼레이드<사진=천안시청 제공>
<지진호 교수의 축제이야기 '천안흥타령춤축제2016'>
◆흥타령 춤은 아파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능소아가씨의 역설적인 한의 문화
조선시대의 천안삼거리는 한양에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이를 오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 요충지였다. 그래서 천안 삼거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많았던 곳으로, 여러 종류의 가슴시린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중 '능소 처녀와 박 선비의 사랑이야기'가 대표적인데, '천안흥타령춤축제' 는 바로 이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조선 선조때 유봉서라는 선비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 능소와 천안 광덕산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징집령이 내려 유봉서는 주막집 과부에게 능소를 부탁하고 "이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한뒤 딸과 생이별하고 말았다. 그후 능소는 기품 있고 총명한 처녀로 성장했다. 능소가 16살이 되던 어느날 전라도 고부에서 과거보러 가던 박현수라는 선비가 도둑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주막을 찾았다. 능소는 그를 보살펴주다가 그만 서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듬해 봄,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 박 선비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능소는 버드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북쪽 하늘을 쳐다보며 "저 나무가 무성해지면 아버지와 낭군이 돌아오시겠지"라고 말하며 한숨짓곤 했다.
이듬해 증광시가 열렸고, 시제는 "봄날에 꾀꼬리는 울고 바람은 산들거리네"였다. 박 선비는 능소와의 만남과 이별을 시험지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장원급제였다. 삼일유가(三日遊街)후 박선비는 답안지에 쓴 시구절은 자신과 능소와의 인연을 쓴 것이라고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은 박선비를 충청우도 암행어사에 제수하였다. 암행어사가 된 박 선비는 찢어진 갓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천안으로 내려갔지만 능소는 한결같이 박선비를 대했다.
며칠후 천안에서 암행어사가 출두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윽고 암행어사 행차가 능소의 집 앞에서 멈추자 박선비가 나타났다. 그 광경을 본 이웃사람들은 풍악을 울리며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자 박선비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안~삼거리~흥흥~ 능소의 버들은~흥~" 경사스런 날에 흥겹고 신나게 부른 이 흥타령과 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천안 삼거리 흥타령'이 되었다. 그리고 능소가 심은 길가의 버드나무를 '능소 버들'이라고 후세사람들은 말했다.
이같은 능소 처녀와 박 선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가요, 소설, 영화, 마당극, 뮤지컬 등 여러 장르의 창작소재가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한을 흥으로 풀어낼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은 억눌림에서 나오는 정서인데 비해, 흥은 해원(解寃)의 춤에서 시작된다. 농무나 강강술래, 마당놀이, 각설이타령도 한을 흥으로 풀어낸 한국인의 창조적 능력의 결과물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 천안처녀 능소의 설움, 이별, 기다림의 한이 흥타령 춤과 민요가 되었고, 이제는 '흥타령춤축제'로 승화되었다. 그러므로 천안 흥타령 춤축제는 아파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능소아가씨의 역설적인 한의 문화를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이해하기 위해 개최하는 축제인 셈이다.
올 가을, 국제춤축제연맹(FIDAF)총회와 함께 열리는 천안에서 '다 함께 흥겨운 춤을!(Let's Dance in Cheonan!)' 추며 우리 가슴의 한을 멋진 사랑으로 승화시켜보자. <지진호(건양대 교수/ 관광-축제 전문가)>
◆축제 속으로 떠나는 여행 '천안흥타령춤축제2016'
▶축제개요
◇일시 : 2016. 9. 28(수) ∼ 10. 2(일) /5일간
◇장소 : 천안삼거리 공원 및 시내일원
◇주요 프로그램 : 전국춤경연대회, 거리댄스퍼레이드(천안, 서울명동), 국제민속춤대회, 전국대학치어리딩대회, 막춤대첩, 천안월드댄스컴피티션, 프린지, 능소전 공연 등
◇흥타령 춤축제=아파도 웃을 수밖에 없었던 능소아가씨의 역설적인 한의 문화를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이해하기 위해 개최하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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