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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속살을 따라 걷는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기사입력| 2014-10-28 17:21:32
◇지질트레일은 단순한 관광나들이 코스와는 그 개념부터가 다르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관광자원화의 전형이다. 유니크한 제주의 지질자원에 지역색 가득한 역사-문화 등 인문자원과의 융복합, 아울러 지역주민에게 경제적 이익 환원이라는 콘셉트까지 담고 있다. 10월 25일 지질트레일에서 만난 청굴물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화산섬에 깃들어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삶의 궤적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여행코스가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 주말(25일) 오픈한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이 그것이다. 제주도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이후 제주에 펼쳐진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역', '수월봉 지역'에 이어 세 번째로 개통된 코스이다. 이번 트레일은 용암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 적응하며 삶을 일궈온 제주사람들의 체취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따라 펼쳐진 올레길에서는 미처 맛볼 수 없었던 소중한 가치 또한 만날 수가 있다. 제주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젖어 들 수 있는 가치 있는 여정을 따라 발길을 옮겨 보았다. 제주=글사진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제주사람들의 삶의 원형을 따라 걷는다

'제주 사람들은 속내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제주가 겪어온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제주의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화산섬 제주의 대자연은 곳곳에 비경과 숨은 가치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 한두 번의 짧은 제주 방문으로 제주를, 제주사람들을 다 알았다고 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제주의 대표관광지만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러보아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번 선보인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을 걷게 되면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만날 수가 있다. 척박한 용암대지 위에 일궈낸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은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지문에 다름없다.

2010년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이후 앞서 선보인 '수월봉 지역'(고산1,2리, 용수리)과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역'(사계리, 화순리, 덕수리) 트레일 등 두 곳은 제주의 지질 역사와 경관에 초점이 더 맞춰진 코스다. 반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인들의 삶의 원형을 담아내려는 콘셉트가 강하다. 화산 분출 시기 때부터 거친 지질을 어떻게 이겨내며 삶을 지켜왔는지, 그 생존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녕-월정 트레일은 김녕어울림센터를 출발해 월정리 무주포와 한모살을 돌아오는 14.6km코스이다. 쉬엄쉬엄 걷고 사진 촬영에 다리쉼을 하자면 5~6시간 정도 걸린다. 트레일 중에는 용암바위인 '빌레'를 깨고 걷어내며 밭을 일구는 한편 고기잡이를 해 온 주민들의 생활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는 독특한 지질자원과 이를 바탕으로 일궈낸 마을의 역사와 문화, 신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쉰다.



▶초인적인 삶의 의지 '빌레왓'& '흑룡만리'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에는 '바당밭, 빌레왓을 일구는 동굴 위 사람들의 이야기 길'이라는 부제가 따른다. '바당'과 '빌레'는 제주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키워드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도 방언이다. 경작할 땅이 부족한 마당에 바다의 소중함은 더했다. 특히 용암이 바닷속으로 흘러들어가 만들어낸 얕은 바다 '조간대'는 '멜(멸치)'이 서식하는 천혜의 환경이었다. '빌레'는 용암이 흐르다 식은 평평한 현무암 바위지대다. 그 깊이가 수십㎝부터 2m 가까이 쌓인 불모지에 다름없다. 제주 사람들은 이처럼 척박한 터전위에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빌레를 걷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비로소 만든 밭, 빌레왓에 메밀, 고구마 등 구황작물에 당근과 콩 등을 심었다. 캐낸 현무암 덩어리로는 바람막이 돌담을 쌓았다. 김녕-월정 트레일에서 만나는 들판, 마을에 유독 아름답고 긴 돌담이 펼쳐진 이유이다.

그 아름다움을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 들녘을 휘감아 도는 검은 용에도 비유했다. '김녕밭담길' 초입에는 주민들이 진(긴)빌레정을 세웠다. 정자에 오르면 제주에서도 원형이 잘 남아있다는 밭담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굴 위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군다

뜨거운 마그마는 땅 아래로 동굴을 형성시켰다. 만장굴과 당처물동굴, 용천동굴, 게웃샘굴 등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동굴들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일원은 땅아래로 동굴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 지역 주민들은 동굴 위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에메랄드빛 물색을 자랑하는 김녕 바닷가는 밀물때에도 물이 얕다. 용암이 흘러 펼쳐놓은 빌레가 넓게 형성된 '조간대'다. 썰물 때에는 바닥이 드러난다. 물 빠진 빌레 위에서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고망낚시'를 즐기고, 해조류를 채취(바릇잡이)한다.



▶바닷가 민물 목욕탕 '청굴물'

용암이 빠져나간 동굴은 지하수 통로가 됐다. 맑은 물은 동굴을 통해 바닷가로 흘러들었고, 해안 마을에서는 이를 긴요한 샘물로 활용했다. 이들 샘은 전복의 내장을 일컫는 제주 방언 '게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땅이 꺼져 동굴과 닿는 부분이 전복처럼 둥글납작하다고 해서, 그리고 전복 내장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주변에 폭포가 없는 김녕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솟는 물을 돌담으로 가둬 물맞이 장소로 활용했다. 청굴물이 그것이다. 솟아나는 맑은 물로 민물 목욕을 즐긴 셈이다. 청굴물은 가운데 돌담을 쌓아 남녀구분해서 사용했다. 바당쪽은 남자, 마을 쪽은 여자가 썼다. 10월 하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동네아이들이 청굴물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제 아무리 제주도라고는 하지만 늦가을의 청굴물은 차갑게만 느껴지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한쪽 청굴물에서 낚시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제법 진지해 보인다.



▶용암이 빚은 언덕 '투물러스'

지질트레일 코스에서는 제주 무속신앙의 흔적도 만난다. 제주도는 섬특유의 무속신앙이 발달했는데, 돼지를 제물로 삼은 돗제를 치른 귀네기동굴, 해녀들이 잠수굿을 하는 성세깃당, 마을 수호신을 모신 김녕본향당 등 곳곳에 무속신앙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트레일의 반환점은 월정리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해변에는 운치 있는 카페 등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바닷가에는 용암이 빚은 언덕 '투물러스'가 펼쳐져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제주 관광공사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길 열림행사 개최

제주관광공사(사장 최갑열)는 25일(토) 오전 제주시 김녕 어울림센터에서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길 열림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역주민-관광객 등 15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최갑열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발걸음 아래에 용암동굴이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도의 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지문에 다름없다"며 "제주도의 내력과 속살을 담은 김녕-지질트레일이 지속가능한 제주도의 소중한 관광자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행메모

▶가는 길 =제주공항~일주동로~김녕사거리에서 좌회전, 마을길에서 우회전~김녕어울림센터

▶묵을 곳=지오하우스 1호, 2호점이 문을 열었다. 제주 농가를 개조한 숙소로 김녕과 월정 지역의 지질 구조와 문화 등을 모티브로 인테리어를 했다. 취사가 가능하다.

▶미식거리=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활용한 지오푸드(Geo-Food)도 맛볼 수 있다. 당근주스, 당근 양파주스,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미냉국', '톳주먹밥', '몸죽' 등을 맛볼 수 있다.

늦가을 제주, 추자도일원에서는 부드러운 삼치회가 별미다. 올해는 한 달가량 일찍 잡히고 있다. '추자섬바당' 등 제주시내 횟집에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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