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조완제 기자의 재계 인사이트]긴 터널에서 나온 담철곤 회장, 다음 승부수는?
기사입력| 2019-01-31 09:43:14
재벌가 일부 사위들이 실적부진이나 경영상 이견 등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존재감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독 강력한 오너십을 행사하는 사위가 있다. 바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다. 장인인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로부터 오리온(옛 동양제과)을 물려받은 담 회장은 화교 출신이라는 이점을 살려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키는 등 국내 제과업계의 '대세'로 올라섰다. 비록 옛 전문경영인 등과의 법정 소송으로 이미지에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초코파이 신화' 등은 그의 경영 수완을 빛나게 하고 있다.
반면 담 회장의 손윗동서이자 이 창업주의 맏사위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개인투자자로부터 기업어음(CP) 사기를 친 '동양 사태'에 연루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어, 같은 동양가(家) 사위로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위 출신 재벌 총수로는 재계에서 존재감이 가장 컸지만 점차 잊혀진 인물이 되고 있다.
30일 재계 등에 따르면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과 1980년 결혼한 담 회장은 동양시멘트 과장으로 입사한 뒤 1년 만에 옛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겼다. 동양제과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이양구 창업주가 타계하자 1989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후 2001년 동양제과를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오리온으로 사명을 바꾸고 회장에 올랐다.
그 뒤 담 회장은 상당한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74년에 출시한 초코파이를 초히트제품으로 키운 장본인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1990년대 초부터 중국·베트남·러시아 등 해외시장까지 개척해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2008년부터는 웰빙 트렌드에 맞춰 닥터유, 마켓오 등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포카칩·고래밥 등 스낵제품을 히트시키며 시장지배력을 높여왔다.
담 회장이 이처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지배구조가 바탕이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담철곤 회장은 현재 지주회사인 오리온홀딩스 지분 28.73%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부인이자 이양구 창업주의 차녀인 이화경 부회장의 지분(32.63%)과 비교해 별로 차이가 없다. 담 회장의 든든한 동반자인 이 부회장의 지분까지 합하면 과반을 훌쩍 넘어선다.
그는 장인인 이양구 창업주로부터 옛 동양제과 지분 12.83%를 받은 것을 바탕으로 해 이 정도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담 회장이 해외 헤지펀드로부터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다른 대기업 오너나 지분이 없어 언제든 경영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다른 재벌가 사위들과 달리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지분율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우리 기업 정서상 보유 지분이 없어 오너십을 갖지 못한 사위는 여느 전문경영인처럼 출중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며 "담철곤 회장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자유로워 본인이 생각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이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90년대 초 매출액과 시가총액이 약 1800억원, 550억원에 불과했던 오리온을 2조원 이상(2018년 연결기준 예상), 5조6900억원(지난 29일 기준, 오리온홀딩스 시가총액 포함)으로 각각 11배, 100배 이상 성장시켰다. 글로벌 제과산업 전문지인 미국 '캔디인더스트리(Candy Industry)'가 매년 전 세계 제과기업의 전년도 매출액을 기준으로 선정·발표하는 순위에서 7년 연속 15위권에 진입할 정도다. 오리온은 국내 기업 중에서는 순위가 가장 높다.
물론 담 회장이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우선 지난 2011년 6월 300억원대 회삿돈 횡령 및 유용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위장계열사 임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38억원 가량을 횡령하는 등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이를 다시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석방됐다. 결국 2013년 대법원도 집행유예를 선고해 복역에 대한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경찰이 지난해 9월 담 회장을 회삿돈 200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담 회장을 불러 포토라인에 세우기도 했으나 불기소하면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또 담 회장은 자신 밑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있던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이 여러 사안으로 계속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중반까지 다툼이 진행됐으나 모두 불기소로 결론이 나면서 심적 부담을 덜었다.
담 회장은 최근 이런 분쟁보다는 사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중국·베트남 등 해외사업이 커지면서 주가가 크게 올라 시가총액도 덩달아 커졌지만, 실제 국내에서 매출이 작아 일자리창출 등 국내에서의 사회적 공헌에 한계가 있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오리온의 매출은 70% 가량이 해외에서 창출되고 있다.
때문에 담 회장은 국내에서도 매출을 키우기 위해, 제과 외의 사업 다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간편식(HMR), 기능성 물, 디저트, 건강기능식품 등이다. 특히 지난해 출시한 가정간편식 브랜드 '마켓오네이처'는 간편하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직장인, 학생 등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오리온은 마켓오네이처를 향후 5년 내 연 매출 1000억원의 메가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한 '디저트 초코파이'가 주력인 디저트 브랜드 '초코파이 하우스'의 경우 2017년에 론칭한 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줄 서서 사먹는 초코파이'로 점차 입소문이 나고 있다. 담 회장은 디저트 초코파이를 대한민국 대표 디저트로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담 회장은 이들 사업의 해외 진출까지 계획하는 등 성장동력에도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담 회장과 달리 현재현 전 회장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버렸다. 담 회장처럼 경영권에 안정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현 전 회장은 오리온이 분리되기 전인 2000년 전후 20대 그룹에도 진입하는 등 2010년대 초반까지 별다른 암초 없이 순항했으나 2012년 이후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사기성 CP와 회사채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친 '동양 사태'로 2013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나오는가 하면 검찰의 조사도 받았다. 결국 현 전 회장은 동양 사태를 비껴가지 못하고 2014년 1월 구속된 뒤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현재 옛 동양그룹은 해체돼 일부 계열사들은 다른 그룹에 매각되거나 폐업을 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담철곤 회장이나 현재현 전 회장은 모두 사위 출신 총수이지만, 오너의 경영능력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 것으로 봐야 한다"며 현 전 회장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했다. 그러나 동양 사태의 중심에 있던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의 중견간부는 "현재현 전 회장이 담철곤 회장처럼 안정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동양 사태 전후에는 부인인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움직였기에 현 전 회장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장모인 이관희 여사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잠시 외부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다시 수감돼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가석방이나 사면이 아니면 2021년까지 복역해야 한다.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