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국토부
내년 1월 한국형 '레몬법' 시행을 앞두고 '기대반 우려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권익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여러 허점으로 인해 효과적인 시행이 이뤄질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효과적인 소비자 보호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을 근간으로 한 '레몬법'은 새로 산 자동차에서 반복적으로 고장이 발생하면 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법안이다. 레몬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하자 있는 상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새 차 하자 발생시 교환·환불…"소비자 권익 개선"
12일 자동차업계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런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일명 레몬법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도된 지 1년 이내이고 주행거리가 2만㎞를 넘지 않은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될 경우 자동차제작사가 이를 교환 또는 환불해주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원동기와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 주요 부위에서 똑같은 하자가 발생해 2번 이상 수리했는데도 문제가 또 발생한 경우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또한 이처럼 주요 부위가 아닌 구조와 장치에서 똑같은 하자가 4번 발생하면 역시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주요 부위든 그렇지 않든, 1번만 수리했더라도 누적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는다면 역시 교환·환불 대상이다.
이런 하자가 발생하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탁 운영하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중재에 나서게 된다. 법학, 자동차, 소비자보호 등 전문가(최대 50명)로 구성되는 심의위는 필요한 경우 자동차제조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성능시험을 통해 하자 유무를 밝혀낼 수 있다.
국토부는 이같은 레몬법이 시행되면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경우 자동차제조사와 직접 담판을 짓거나 민사 소송 또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레몬법에는 심의위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재 판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는 점도 포함됐다. 따라서 자동차제조사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 집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레몬법은 또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됐을 때 이는 당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소비자가 하자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제조사가 하자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환불 기준도 개정안에 명시됐다. 계약 당시 지급한 총 판매가격에 필수 비용은 더하고, 주행거리만큼의 사용 이익은 공제하되, 차량 소유자의 잘못으로 자동차의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한 경우에는 중재부에서 별도 검토해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 이익을 계산할 땐 우리나라 승용차 평균 수명을 주행거리 15만㎞로 보고 그에 비례해 산정하도록 했다. 만약 소비자가 3000만원에 구입한 차량으로 1만5000㎞를 주행하고 나서 환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차량의 10%를 이용했다고 보고 3000만원에서 300만원을 제한 2700만원을 받는 식이다. 여기에 신차 구입 당시 냈던 취득세와 번호판값도 자동차 회사에서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자동차 제조사는 소비자와 신차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교환·환불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허점 많아 '반쪽짜리' 우려도…"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필요"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레몬법에 여러 허점이 있어 반쪽짜리 대책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하자의 중대성 구분 모호, 환불 및 교환의 강제성 미비, 6개월 입증 전환 책임의 형평성 등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장 '중대 하자'와 '일반 하자'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가 논쟁거리로 떠오를 것"이라며 "예컨대, 소비자 입장에선 '엔진 시동 꺼짐 현상'이 중대한 하자일 수 있지만 제조사가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우'라며 발을 빼면 그만"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제조사의 전문적인 의견에 대해 심의위가 뒤집을만한 입증자료를 낼 수 있는가의 문제도 나올 수 있다.
환불 및 교환의 강제성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중재 절차를 밟는 것이 권고 사항이어서 강제성이 없고, 중재 결과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경우 기존과 마찬가지로 소송까지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6개월 기준 입증 책임의 애매모호성도 존재한다. 김필수 교수는 "이번 한국형 레몬법에는 6개월내 하자에는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을, 6개월 이후 하자에는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완전한 소비자 보호가 이뤄질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에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국형 '레몬법'이 효과적으로 소비자를 배려하는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몬법이 자리잡은 미국에선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결함을 숨기거나 소비자를 우롱하면 천문학적인 벌금과 소비자 보상금을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결함을 은폐하거나 대책이 늦어도 상대적으로 낮은 벌금만 내면 된다"며 "하지만 미국의 경우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 기업의 존폐 위기까지 벌어질 수 있어 문제가 커지기 전에 소비자를 배려하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