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핵심 상권으로 불리는 연세로. 지난 2014년부터 차가 다니지 않는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됐다. 사진=이정혁 기자
1980~1990년대 후반, 대학가 상권 1위는 단연 지하철 2호선으로 연결된 서울 이대역과 신촌역 부근이었다.
두 상권은 인접해 있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대역에서 이대 정문까지 이어진 거리가 옷 가게, 신발 가게, 액세서리 가게와 맛집이 어우러진 패션의 상징이자 유행의 집결지였다면 신촌역 주변은 '새로운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새롭고 독특한 문화가 넘쳐나는 청년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젊음의 해방구' 역할을 하던 신촌·이대 상권 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고, 그 거리를 가득 메우던 인파는 인근 홍대로 옮겨갔다.
그렇게 썰렁하던 이대·신촌 상권이 수년 전부터 지역 지자체와 임대인, 창업자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아직은 과거의 북적임까지는 아니지만 유동 인구를 서서히 늘려가고 있어 옛 명성 찾기에 시동이 걸렸다는 평가다.
▶강북 3대 상권이던 신촌·이대는 왜 몰락했나?
신촌·이대 상권은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으로 주변에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홍익대 등 서울의 주요 대학교가 몰려있어 10만명이 넘는 대학생과 마포구·서대문구·은평구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배후로 두고 있다. 또 지하철 2호선 뿐만 아니라 경의선 신촌 기차역이 운행되고 있고 인천·일산·안양 등의 수도권까지 연결되는 다양한 버스노선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특히 대학교가 몰려있다 보니 통학이 불편한 학생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고시원 등도 다수 분포돼있고 외국 유학생들도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신촌·이대 상권은 명동과 종로에 이어 강북 3대 상권으로 불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상권이 커지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영세 상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음식점과 카페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명동이나 종로와는 다른 '신촌·이대스러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바뀐 이곳은 찾을 이유가 없는 평범한 거리가 됐다.
특히 '패션 메카'였던 이대 상권은 온라인 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기고 중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 '패피'(패션 피플)의 발걸음이 끊어졌고, 골목길에 빼곡하게 들어선 옷집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지난 2014년부터 연세대 신입생들이 신촌을 떠난 것은 결정타가 됐다.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로 1년간 의무적으로 통학하게 되면서 인근 상인들의 시름은 더 깊어진 것. 신촌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갓 입학한 학생들이 친구를 불러서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기 때문에 이 지역 최대 소비층은 대학교 1~2학년생이고 3~4학년은 취업 준비 등으로 도서관에 박혀있어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런데 신입생들이 송도로 등교하기 시작하며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뉴스메이커가 될 수 있는 창업이 정답"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신촌·이대 상권이 최근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우선 지난 2014년 신촌의 핵심 상권이라고 할 수 있는 연세로에 차가 다니지 않는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되면서다.
서대문구는 신촌 오거리에서 연세대 앞까지 이어지는 연세로의 왕복 4차선 도로를 2차선 도로로 줄이고 보행도 폭을 최대 8m로 넓혔다. 주말에는 차량이 다니지 않고 평일에도 버스만 오갈 수 있다. 차가 사라진 공간에서는 물총과 맥주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렸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신촌을 다시 찾고 있는 것.
공실이 넘쳐나던 이대 상권은 창업 거리인 '이화 52번가'로 생기를 되찾았다. '이화 52번가'는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에 위치한 점에 착안해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곳의 비어있는 상가를 활용해 청년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한 것. 그 결과 직접 디자인한 공예품을 파는 디자인 가게, 레스토랑, 서점까지 개성 있는 가게 20여개가 탄생했다. 청년들이 낙후된 상권에 들어와 활기를 불어넣자 유동인구가 늘어났고 상인들도 청년 창업자를 반기게 됐다.
신촌·이대 일대에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자연스럽게 상권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이 일대의 임대료가 올랐다지만 여전히 홍대 상권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홍대에서 신촌으로 이동하는 상점도 생겨나고 있다.
새롭게 활기를 찾고 있는 신촌·이대이지만 과거와는 상권의 지형도가 달라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신촌에이플러스부동산의 김성호 실장은 "신촌의 경우 차량 이동이 금지되며 고급 식당이나 유흥주점의 발길은 뚝 끊긴 반면, 편의점이나 길거리음식점은 대박이 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대 상권의 경우 과거 패션 중심이었다면 '이대 52번가'의 경우 먹거리, 문화, 생활용품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신촌과 이대 상권이 아직은 온기가 막 돌기 시작한 초기 단계지만 예비 창업자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권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학교와 학원이 밀집된 지역적 특성상 20~30대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업종만 잘 선택하면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호 실장은 "강남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명 대형학원이 밀집해 있는 신촌역 4번 출구와 신촌로터리 주변으로는 젊은 층이 자주 찾는 프랜차이즈 카페, 패밀리 레스토랑 등의 창업이 유망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현대백화점 뒤쪽 골목으로는 교통이 편한 이곳을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직장인들을 겨냥한 음식점과 주점이 경쟁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개성만을 앞세운 소규모 창업은 아직 상권이 완전히 살아나지 않은 만큼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보다는 대형매장 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창업 형태가 더 바람직하다는 진단이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연남동 등을 살린, 트렌디한 소규모 매장은 현 단계에선 사람들을 다시 끌어 모으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 창업통 소장은 "신촌 이대 상권이 살기 위해서는 홍대에 집중돼 있는 소비자들을 이곳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단순히 예쁜 카페, 예쁜 가게 만으로 단시간에 상권을 되살리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보다는 프랜차이즈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스타 창업자들이 진출을 하면서 시선몰이를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뉴스메이커가 될 수 있는 숙련된 선수 창업자들이 이곳에 입점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