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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우리 동네 상권] 핫 스팟-핫 플레이스 ⑤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봉리단 길
기사입력| 2017-10-12 15:37:54
격세지감(隔世之感)….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상권의 분위기가 딱 이렇다. 불과 10년 전 만해도 지역 주민의 생계와 관련된 점포들로 인해 시장골목처럼 인식됐으나 최근 서울 최대 상권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샤로수길'이 알려지며 20~30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샤로수길은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좁은 골목길이다. 서울대 정문 모양인 '샤'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합성어가 샤로수길이다. 도로상 지명은 관악로 14길로 600m 가량의 일방통행 골목길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음식점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가로수길 못지않게 이색적이고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음식점들이 많아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최근엔 상권이 서울대입구역에서 봉천역 방향으로 확대되며 '봉리단길'(경리단길의 '경'에 봉천동의 '봉'을 넣어 만든 조어)로 확대되고 있다.
▶유동인구 많고 저렴한 임대료로 청년사업가에겐 '기회의 땅'
샤로수길 상권이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이다. 부족해 보이고, 허름한 분위기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로수길 등 기존 도심 상권들이 형성되는 것과 태생이 다르다.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 대신 변변한 건물도 없이 크고 작은 다세대 주택과 빌라, 단층 상가, 오래된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분위기. 주황색 가로등과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 얼기설기 난 골목길, 깨진 아스팔트와 시멘트길은 1980~1990년대 옛 향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며 복고 트렌드와 궤를 같이 하며 소비주체인 20~30대 젊은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또 다른 결핍으로는 '돈'을 꼽을 수 있다. 부족한 창업자금 때문에 임대료를 줄이기 위해 젊은 자영업자들이 좁은 골목에 매장을 열었고, 입소문을 타며 지금의 샤로수길을 만들어냈다.
샤로수길은 당초 서울대입구역 주요 상권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서울대입구역 인근 대로변의 허름한 골목에 불과했다. 세탁소, 미용실, 작은 시장 등 동네 장사를 하는 매장들이 전부였다. 덕분에 샤로수길의 상가 임대료는 저렴했다. 10년전 ㎡당 1만원 미만이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당 3만원이 넘어섰지만 여전히 서울 주요 상권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다세대 주택과 오래된 빌라가 밀집해 있던 만큼 영업이 가능한 상가 매장 규모는 대부분 66㎡(20평) 남짓으로 소자본 창업도 가능하다.
매장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초기 창업자금의 부담을 덜기에 충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취직 대신 창직(創職·직업을 만듦)에 나선 젊은 사업가들이 샤로수길에 둥지를 틀었다. 해외 이색 음식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주여행 중 수제버거의 매력에 빠진 청년이 현지에서 직접 배워와 차렸다는 '저니(Journey)', 아늑한 분위기에서 저렴한 값에 스페인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모즈', 제주 고기국수를 파는 '제주상회', 일본 가정식을 파는 '키요이', 프랑스 가정식집 '아멜리에' 등이 대표적이다. 수제버거인 9온스버거와 에그썸도 작은 매장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부족한 게 많은 상권으로 분류됐던 서울대입구역이지만 이제 많은 것이 있다. 서울 주요 지하철역중 유동인구 수가 많은 곳 중 하나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서울대입구역의 유동인구는 일평균 12만명 이상이다. 유동인구의 비율도 소비여력이 적은 10대를 제외하고 골고루 분포돼 있다.
오피스 밀집 지역인 강남과도 가까워 출퇴근 1인 가구가 많은 만큼 거주인구도 상당하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거주인구는 2만여명 이상이다. 무엇보다 최근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20~30대 여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몰려든 청년사업가들에게 샤로수길은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소비 여력이 높은 이들의 발길이 많은 만큼 샤로수길 상권의 점포당 매출은 최근 5년간 상승세를 보였다. 이같은 분위기에도 샤로수길 상권에는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샤로수길 상권이 급성장하자 임대료와 권리금이 상승했다. 소규모 상가로만 구성된 골목의 특성상 대형 프랜차이즈가 진출하지 않았지만 자본을 앞세운 창업자들이 샤로수길에 주목하면서부터다. 특히 이들은 단순 자본 뿐 아니라 매장 규모의 특성상 이색적인 아이템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서고 있다. 자본이 부족한 청년사업가들이 일궈 놓은 상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건물주들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매물을 꽉 틀어쥐고 있다.
봉천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샤로수길을 비롯해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상가 임대료가 주요 서울 시내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최근 10년 사이 2~3배 이상 올랐고, 상당한 금액의 권리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샤로수길의 임대료와 권리금에 부담을 느낀 자영업자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매장을 찾아 서울대입구역에서 봉천역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샤로수길의 경우 2~3년전 권리금이 없는 곳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33㎡(10평) 기준 권리금은 입지에 따라 5000만~1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이같은 현상을 두고 젠트리피케이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비싼 임대료와 권리금으로 인해 기존 자영업자들이 주변 지역으로 숨어들어 샤로수길을 비롯한 서울대입구 기존 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력에 다양한 업종으로 차수 변경까지 한 번에 해결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서울대입구역 인근 상권은 적은 자본을 앞세워 이색 매장을 운영하려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비싼 임대료에 부담을 느껴 이색 아이템으로 무장한 소자본 창업자들이 서울대입구역에서 봉천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둥지를 틀며 봉리단길이라는 새 상권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젠트리피케이션과 달리 좁은 골목과 주거밀집지역, 비슷한 분위기의 지역적 특징은 서울대입구역 상권의 확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소장은 "서울대입구역 상권은 기존 서울 도심속 상권과 다른 모습"이라며 "샤로수길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만들어진 상권이 기존 상권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봉리단길은 샤로수길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만큼 가로수길 옆에 생겨난 새로수길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업종이 다르다는 점이다. 새로수길은 가로수길과 비슷한 디저트와 커피 등 업종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봉리단길은 주류 판매 위주의 술집이 주를 이룬다. 샤로수길에 분위기 좋은 식당이 주를 이루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서울대입구역을 주로 찾는 유동인구의 연령대가 20~50대인 만큼 샤로수길에서 식사를 하고 봉리단길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상권이 형성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봉리단길은 지역적 특성상 호남 출신들이 많다. 한옥마을을 앞세워 전국 최고 상권으로 떠오른 전주와 남도음식 등을 대표하는 메뉴를 갖고 있는 기존 매장들과 신규 퓨전 메뉴를 내세운 매장의 신구 조화도 적절하게 이뤄져있다. 여기에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봉천역 인근 상권을 즐겨 찾는 김지현씨(25·서울 상도동)는 "샤로수길과 달리 봉리단길 상권에는 5분 거리에 없는 메뉴가 없을 정도로 상권이 뛰어나다"며 "양식을 비롯해 전주식 막걸리집까지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 친구들과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입구역 상권 중 봉리단길은 자영업자 뿐 아니라 상가 투자자들에게도 기회의 땅이다. 자영업자들이 관심을 갖는 상권인 동시에 구도심 분위기로 형성된 상권인 만큼 대규모 리모델링 없이도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인근 도심 정비가 한창이다. 관악구청은 서울대입구역 상권 재정비 일환으로 서울대입구역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도심 재정비에 나서고 있고, 새절-여의도-서울대입구역 경전철도 예정돼 있다.
봉천역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봉리단길로 불리는 지역은 2년 전만해도 C급 점포지역으로 분류 됐던 곳으로 상가 투자자들의 관심이 적은 지역이었다"며 "최근 서울대입구역 상권의 확대와 지역 개발 호재 등이 맞물리며 낡은 건물을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 소장은 "서울대입구역 상권은 많은 유동인구와 거주인구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했던 기존 주요 상권과 달리 외부 불안요소에도 안정적인 매장 운영이 가능한 게 최고 장점으로 꼽힌다"며 "좁은 골목길과 다세대주택 등의 밀접해 있는 지역 특성상 대형 매장보다는 특색 있는 아이템을 바탕으로 작은 매장 운영에 나서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