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이 지주사 제일홀딩스의 상장을 코앞에 두고,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증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 "편법증여에 의한 몸집 불리기 방식으로 25살의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고 하림그룹을 거론한 데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하림의 승계지원·사익편취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검토중인 것.
편법증여 대상자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1남 3녀 중 장남인 준영씨다. 이에 대해 하림 측에서는 "위법행위는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하림그룹에 대한 의혹과 눈총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양계사업으로 출발한 하림그룹은 국내 축산 사료 시장, 닭고기 시장, 돼지고기 시장 1위로, NS홈쇼핑, 해운사 팬오션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하림은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재계 30위 대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자산 규모가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됐다.
▶ 비상장사 주식 증여 후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 의혹
1992년생인 준영씨는 현재 군대를 다녀와 졸업을 앞둔 대학생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올품→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하림그룹의 지배구조에서 김 회장보다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홍국 회장은 2012년 비상장 계열사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 지분을 준영씨에게 물려줬고, 100억원대 증여세가 부과됐다. 그런데 그룹 자산규모에 비해 증여세가 적다는 점 외에, 증여세 마련 방법에 대한 의혹이 뒤늦게 불거졌다. 올품이 지난해 지분 100%를 보유한 준영씨를 대상으로 30%(6만2500주) 규모의 유상 감자를 하고, 그 대가로 준영씨에게 100억원을 지급하는 방식을 동원했다는 것.
유상 감자는 주주가 회사에 본인 주식을 팔고 돈을 받는 것으로, 준영씨는 유상감자를 통해 회사로부터 100억원을 받으면서도 올품 지분 100%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올품이 비상장 계열사이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 하림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공교롭게 올품이 준영씨에게 100억원을 지급한 날 NS홈쇼핑 주식을 담보로 대구은행에서 100억원을 빌렸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이자 비용'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기업의 차입은 자연스러운 기업 활동으로, 해당 대출이 유상감자 비용으로 쓰였는 지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준영씨는 연납 형태로 나눠서 증여세를 완납한 상태로, 증여세 납부를 위한 차입금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뿐 아니라 여권에서 제기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바로 이 때 불거졌다. 준영씨에게 증여되기 전인 2011년 말 707억원 수준이었던 올품과 한국썸벧의 매출은 지난해 416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이 올품에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하림 관계자는 "올품이 몸집을 키우게 된 데는 지배구조상 공정위의 권고를 따르느라 어쩔 수 없이 에코캐피탈과 합병한 것 등이 크게 작용했다"며, "그룹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5년 전의 잣대로 현재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계는 물론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결과적으로 10조원대 대기업의 지배권 승계가 단 100억원의 증여세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 여론이 지배적이어서, 향후 관련 의혹에 대한 접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주사 제일홀딩스 상장에 문제없나?
이같은 편법 증여 의혹은 하림그룹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사 제일홀딩스로 불똥이 튀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이틀간 공모주 청약을 접수한 후 이달 안으로 코스닥에 상장하려는 제일홀딩스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제일홀딩스는 하림(47.9%). 팬오션(50.9%), 팜스코(56.3%), 선진(50%), 하림홀딩스(68.1%) 등 핵심 계열사를 직접 지배하고 있어, 대주주는 그룹 전체를 거머쥐게 된다. 표면상 제일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김홍국 회장으로 지분율은 41.78%다. 그러나 준영씨가 지분을 100% 소유한 계열사 한국썸벧(37.14%), 올품(7.46%) 등의 지분을 합치면 준영씨의 지분율은 44.6%에 달해, 김 회장보다 많다.
제일홀딩스의 기업공개 공모 희망가 밴드는 2만700~2만2700원으로 상단 적용시 약 4600억원 조달이 가능하다. 총 공모 주식 수는 전체 물량의 28.8%인 2038만1000주로 모두 신주 발행이다.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1조6000억원에 달하고, '사실상 대주주'인 준영씨의 주식 가치도 수천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여권과 사정당국에서 하림그룹을 주시하는 움직임이 이어지자, 혹시 이번 논란이 제일홀딩스 상장이나 흥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편법 증여 논란이 공정위의 실제 조사로 이어진다면 제일홀딩스 상장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투자자들이 이번 건에 대해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해소'로 받아들여 오히려 시장에서 높게 평가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상장 일정에 차질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정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