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 홈페이지 중.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신문지나 신발 깔창을 대신해서 사용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이후 불거진 '생리대 가격 거품'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6월초 생리대 생산업체 1위인 유한킴벌리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생리대 가격을 계속 인상하면서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파문은 계속 확산돼 급기야는 최근 시민단체들이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관련 퍼포먼스를 진행한데 이어 국회에서 정부기관이 이와 관련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것.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질의한 '유한킴벌리 등 생리대 제조업체 관련 조사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심 의원이 '동반성장위 우수기업인 유한킴벌리의 경우 규정에 따라 2년간 직권조사 면제 대상에 속하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지 않냐'고 묻자 "신고가 들어와 있어서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현재 유한킴벌리 등 관련 업체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금지'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조사 중이다. 상품·용역 가격의 부당한 결정·유지 또는 변경 행위, 소비자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공정거래법 3조)가 적용된다. 특히, 상품 가격을 수급의 변동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 변동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시키거나 근소하게 하락시키는 행위(시행령 5조)가 이에 해당된다.
심 의원은 이날 "핵심은 생리대 값이 세계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데 있다"며 "이런 막무가내 고(高)가격이 가능한 것은 생리대 시장이 독과점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정위가 유한킴벌리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남용에 대해 책임 있는 조사와 조치에 즉각 나설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국민의당)도 "2004년 부가가치세 면세, 2008년 물가관리 품목 지정 등에 따라 생리대 가격이 현저히 인상될 수 없도록 억눌렀지만 이후 정책적으로 관리를 안 해 급격히 가격이 인상됐을 것"이라며 "시장 우월적 지위의 남용, 가격 담합 개연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담합 혐의는 현재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채 의원이 지적한 내용도) 알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들은 국내 생리대 개당 가격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며, 최근 6년간 펄프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생리대 가격이 올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3일 인사동에서 붉은 물감 등으로 재현된 '피 묻은 생리대'를 내건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시장 1위인 유한킴벌리가 7월부터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다고 발표한데 이어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로 깔창 등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시작됐다.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유한킴벌리의 주장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어 검토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3개월 정도면 공정위의 조사가 어느 정도 결과물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유한킴벌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검토할 자료들이 많고 사안이 가볍지 않은 만큼 3개월 후 결과를 내놓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국내 생리대 가격은 외국과 비교해 비싼 수준이다. 한국참가격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가 개당 331원인 반면, 일본과 미국은 181원, 캐나다 202원, 덴마크 156원이다. 생리대 원자재 가격은 하락하고 있음에도 2010년 이후 국내 생리대 가격은 역으로 25.6%가 올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 펄프와 부직포의 수입물가지수는 6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 각각 29.6%와 7.6% 하락했다.
이에 대해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명확한 사실관계가 빠진 주장"이라며 "최근 6년간 수입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건 맞지만 생리대에 사용하는 펄프는 전체 수입 물량 중 2%에 해당하는 최고급 재료로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 가격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2016년 현재 펄프의 가격지수는 126, 부직포는 113에 달한다"며 "결국 생리대에 사용되는 펄프가격은 26%, 부직포는 13% 오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유한킴벌리 측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생리대 시장의 고급화 경쟁이 심화되며 더 좋은 품질의 자재를 사용하다보니 가격이 상승한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기본 사양만 갖춘 보다 저렴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개발 중"이라며 "여성재단을 통해 올해 150만 패드를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무상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LG유니참 등 생리대 생산업체들도 생리대 기부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업체들의 발표에 소비자단체 등은 생리대 가격 논란을 피하고 보자는 식의 행태라며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 4일 당 상무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이번 논란도 결국 유한킴벌리의 부당한 가격 인상 시도에서 시작됐다"며 "생리를 사치로 만드는 독과점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남용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공정위의 조사 및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