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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제의 재계 인사이트] 4세 경영 임박한 두산,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따라하기?

기사입력| 2015-03-12 18:14:59
'페놀 사건', '비자금 조성' 등으로 물의를 빚어왔던 두산그룹이 곧 창업 3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4세로 넘어갈 것이란 예측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갑(甲)질 행보 등으로 최근 재벌 2~4세의 자질에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면서 두산그룹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두산그룹은 10년 전 소위 '형제의 난'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 드러나면서 오너 일가가 모두 퇴진한 뼈아픈 과거가 있다. 이런 가운데 두산그룹 안팎에서 스웨덴의 국민기업인 발렌베리그룹의 '친족 경영'을 모델로 삼자는 논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은 친족간 경쟁을 통해 그룹 최고경영자(CEO)를 정하는데, 경영 능력은 물론이고, 사회적 책임감도 철저하게 검증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은 경영진 문턱에도 갈 수 없는 구조다.

▶박용만 회장은 창업 4세로 가는 '스톱오버'?

국내 재벌가는 대체로 장자가 후계자가 되고, 나머지 자녀는 일부 기업의 경영권만 가져간다. 이에 비해 두산가(家)는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그룹 총수를 맡는 '형제 경영'을 해왔다. 두산그룹은 창업 2세인 고(故) 박두병 회장이 맥주사업으로 현 그룹의 모태를 일궜고, 박두병 회장 사후 창업 3세부터 형제 경영이 시작됐다. 장남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후 1996년까지 그룹 총수를 역임했다. 박 명예회장이 총수 시절인 1991년에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차남인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2005년 3남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이에 반발하며 '형제의 난'을 일으켜 두산가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두산가는 전문경영인에게 그룹 총수를 대행시키며 위기를 넘긴 뒤 2009년에 지주회사인 ㈜두산을 출범시켰다. 이때 4남인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이 ㈜두산의 회장이자 그룹 총수를 맡으며 형제 경영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어 지난 2012년 5남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총수 바통을 이어받았다.

두산그룹 안팎에서는 박용만 회장을 마지막으로 창업 3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4세로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룹 회장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외부 행사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룹 경영에는 한 발 물러서 있기 때문. 게다가 박용만 회장은 지난 2012년 그룹 총수에 오른 뒤 사업보다는 기업철학인 '두산웨이(DoosanWay)' 정립에 더 중점을 둬 왔다. 두산웨이는 정직과 투명성, 인화, 사회적 책임, 안전과 환경 등을 핵심 가치로 담았다.

재벌그룹의 한 임원은 "두산웨이는 그동안 친족 경영을 하면서 훼손된 그룹 이미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창업 4세로의 원활한 후계 승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박용만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 전념하는 것도 창업 4세에게 그룹 경영을 넘기려는 전 단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박용만 회장은 지난해 그룹 총수들의 모임인 전경련의 부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10대 그룹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하는 한 중견 간부는 "박용만 회장이 2013년 대한상의 회장을 맡을 때부터 재계에서는 (박용만 그룹 회장 체제가) 창업 4세로 가는 '스톱오버(stopover·잠시 머묾)'라는 분석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발렌베리그룹 벤치마킹 통해 지배구조 환골탈태시켜야"

이제 재계의 관심은 창업 4세의 지배구조에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형제 경영에서 '사촌형제 경영'으로 바뀌기에 돌아가면서 총수를 맡는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두산이 지주회사여서 사촌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눠 갖고 독립하는 계열분리도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사촌형제 경영이 시스템적으로 굴러가면서 한 사람이 단독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보다 복수의 오너 일가가 그룹 경영에 공동 참여 형태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사촌들이 계열사를 나눠 맡아 책임 경영하는 GS그룹 지배구조와 비슷하게 갈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그러나 두산그룹 안팎에서는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 지배구조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두산그룹도 친족 경영이나 형제 경영의 폐해를 지적할 때마다 발렌베리그룹을 거론하며 반대 논리를 펴기도 했다. 발렌베리그룹은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에 의해 창업돼 올해로 5대에 걸쳐 160년째 이어오고 있는 스웨덴의 국민기업이다. 다만 발렌베리그룹은 친족 경영을 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그룹 지배구조와는 상당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후계자 선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가령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마칠 것과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친족간 경쟁을 통해 산업과 금융 두 부문으로 나눠 그룹 CEO를 결정한다. 사회적 책임과 함께 경쟁을 통한 엄격한 경영 능력 검증을 거치는 셈이다.

자산운용사의 고위 임원은 "형제의 난이 생긴 것은 두산그룹 총수의 선출이 지나치게 원시적이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창업 4세에 와서는 사촌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는 것도 불가능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쓰러지기 전에 친족 경영의 대명사격인 발렌베리그룹을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4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안다"면서 "(두산그룹은) 친족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렌베리그룹을 거론할 것이 아니라, 벤치마킹을 통해 현재의 지배구조를 환골탈태시켜야 형제 경영에서 빚어진 구태(舊態)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만약 제대로 못하면 사촌형제 경영을 하는 GS그룹처럼 장자가 그룹 총수를 맡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그룹 이미지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정원 회장이 총수 후보 맨 앞자리…두산건설 부진이 '발목'

현재 두산그룹 창업 4세 중 후계구도상 선두에 위치한 인물은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 겸 두산건설 회장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은 4세 중 유일하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룹 총수로 가는 바로미터격인 ㈜두산의 지분율도 6.40%로 두산가에서 가장 높다. 박용곤 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겸 ㈜두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4.27%로 2대 주주다. 그룹 총수인 박용만 회장의 지분(4.17%)은 오히려 이 둘의 지분에 못 미친다. 지분만으로 따졌을 때 이 두 명이 가장 앞서 있는 셈이다.

이어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 산업차량·모트롤 부문 사장이 ㈜두산 지분을 3.64% 보유하고 있고, 차남인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은 2.98%를 갖고 있다.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인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은 2.69%를 갖고 있다. 최근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씨 마저 개인사업을 접고, 오리콤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박 부사장은 1.9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총수 후보 맨 앞자리에 있는 박정원 회장은 두산건설의 실적 부진이 걸림돌이다. 박정원 회장이 지난 200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온 두산건설은 2008년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엄청난 손실을 봐 자본잠식에 빠졌고, 주가는 10분의 1 토막이 났다. 박지원 부회장, 박태원 사장, 박서원 부사장 등 나머지 두산가 일원도 아직까지 경영 능력을 제대로 입증 받지 못해 박정원 회장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경영 능력이 없음에도 총수로 등극하게 되면, 두산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정보업체 대표도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정부까지 재벌그룹의 후계 승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오너 일가가 능력이 안되면 대주주로서의 역할에 그치고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발렌베리그룹처럼 오너 일가의 사회적 책임감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앞서의 기업정보업체 대표는 "최근 불미스런 사생활로 문제가 불거진 두산가 일원은 발렌베리그룹처럼 계열사 경영에서도 손을 떼게 하는 것이 기업을 위해 낫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 사례처럼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경제에디터 jwj@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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