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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국회 통과지연으로 부작용 속출

기사입력| 2015-03-03 09:30:09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는 바람에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서울 홍대 앞 주택가에서 음식점(122㎡ 규모)을 경영하는 A씨(52)는 요즘 권리금을 받지 못하게 된 억울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A씨가 세 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은 2년 계약이 만료되는 오는 10일, 자신의 동생이 그곳에서 가게를 꾸려갈 계획이라며 퇴거를 요청한 상태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건물주가 세를 준 가게의 계약만료 시 자신이 이용하겠다고 할 경우 세입자는 권리금을 받지 못한 채 가게를 비워줘야 한다. A씨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전 임차인을 거리로 내모는 건물주들

A씨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올 초 공인중개업소를 통해 4000만원의 권리금을 제공하고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세입자를 구했다. 인근 가게들은 권리금이 1억원을 넘지만 A씨의 가게는 상대적으로 월세가 비싸 권리금이 낮게 평가됐다. 하지만 건물 주인이 갑자기 더 이상 가게를 임대하지 않고 자신의 동생으로 하여금 장사를 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와 4000만원의 보증금만 챙기고 가게를 비워줘야 할 형편이다.

A씨는 지난해 11월 권리금을 법으로 보장하는 정부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의원 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었다는 소식에 계속 법안의 추이를 지켜봐 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의 통과가 무산되면서 A씨는 오는 10일 계약만료와 함께 권리금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

A씨는 홍대상권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지난 2007년, 당시 비어있던 지금의 가게에 권리금 없이 1억5000만원을 들여 각종 시설을 설치한 뒤 음식점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 180만원이었던 월세는 2년 계약 시마다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5년의 상가임대 보호기간이 종료된 2013년 2월 재계약 시에는 월 임대료가 250만원에서 455만원으로 2배 가까이 폭등했다.

A씨는 "당시 임대료가 너무 많이 올라 가게를 내놓았으나 높은 임대료 때문에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없었다. 또 홍대상권이 향후 더 발전할 것으로 보고 2년 후 상당액의 권리금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재계약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권리금이 물거품이 되어 계약 만료 후 새로 시작할 가게도 얻지 못한 상황"이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닭갈비집(60㎡ 규모)을 운영하는 B씨도 요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쪽으로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통과여부가 자신의 권리금 회수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B씨의 계약만료 기간은 오는 4월29일. 가게 주인은 계약만료 후 자신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통보해 와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 상으로는 권리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가게를 비워야할 입장이다. B씨는 5년 전 보증금 3000만원, 권리금 4000만원의 조건에 현재의 가게를 인수했다. B씨는 "국회에서 4월 임시국회를 열자마자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부터 통과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상가 세입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또 일부 상가 건물주들은 향후 권리금 분쟁에 대비, 재계약 과정에서 임대료를 대폭 올려 세입자들이 권리금을 포기한 채 자발적으로 나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게 일선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기존 상가를 매입하려던 사람들이 권리금 법제화가 확정된 이후 매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상가 매매시장도 찬바람이 불고 있는 상태다.

상가뉴스레이다의 선종필 대표는 "상가 시장의 안정을 위해선 국회에서 조속히 개정안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국회에서 4개월째 낮잠

정부는 지난해 9월 권리금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김진태 의원(새누리당)의 의원 입법 형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은 거의 '낮잠'을 자고 있는 수준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원회 심사를 거쳐 법사위 전체회의→본회의 통과 수순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그동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다룬 것은 2번뿐이고 그때마다 30여분씩 총 1시간의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12월26일 첫 소위원회 미팅에선 여야의원들이 제출한 15개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확인하는 수준이었고, 지난달 24일 처음으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여야 모두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법사위 여당간사인 홍일표 의원실(새누리당) 관계자는 법안심사 소위 논의내용과 관련, "여야 의원들 모두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자는 데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리금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고 지역별 상권의 특성 등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는 게 법사위의 입장. 정교하게 법을 만들지 않을 경우 오히려 분쟁이 많아질 수 있다는 판단아래 각계 전문가 및 국토교통부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홍 의원실 관계자는 전했다. 법사위는 오는 4월 임시국회 때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다시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정부안을 보완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한 서영교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법안통과가 늦어지게 되면 피해를 보는 상가 세입자들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여당안을 일단 최대한 빨리 통과시킨 후 나중에 보완해도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이 제출한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권리금의 법적 보장과 함께 임대인의 협조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즉 임대인은 임대차 종료 후 2개월까지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으로부터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임대인이 이를 위반해 임차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했다. 또 현재는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일 경우에만 5년간 임차권을 보호하는 것에 비해 환산보증금과 상관없이 모든 상가 세입자의 임차권을 5년간 보호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홍대 및 경리단길 등 서울시내 주요 상권의 경우 70% 정도가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또 서울시내 주요 지하철역 주변의 상가들도 대부분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서영교 의원 법안은 임차인의 영업 보호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상가 재건축 시에도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일부 시설물 이전비 등을 보상해주도록 명시했다. 김진태 의원 법안에는 상가 재건축 시에는 기존 법과 마찬가지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상을 해줄 필요가 없도록 돼 있다.

▶정부 책임도 커…충분한 검토없이 방안 발표

전문가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지연으로 시장에 혼란이 일어난 것과 관련해 이 법안을 입안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가보호법 개정안은 법무부와 국토교통부, 기회재정부 등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보다 충분한 검토 없이 섣불리 권리금 보호방안을 발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남영우 나사렛대 교수(부동산학)는 "권리금을 보호한다는 정부의 명분에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상권마다 권리금 액수를 어떻게 판정할 만한 기준이 거의 없다. 권리금을 어떻게 산정하고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법안이 나왔다. 이대로 법을 만들었다가는 너무 많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의 안이한 행정을 질타했다. 당장 실행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법안이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김진태 의원 안에 따르면 권리금에 대해 분쟁이 발생할 경우 시도별로 설치되는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심의·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전국적으로 상가의 기본적인 권리금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놓지 않은 상황에선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에 대해 임대인과 임차인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임대인의 권리금 관련 방해행위를 무 자르듯 판단하기도 어렵다. 가령 임대인이 임대료를 대폭 올렸을 경우 기존 임차인은 새 임차인을 구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배까지 임차료를 올렸을 경우를 방해 행위로 볼지 판단하기 애매하다. 권리금은 너무 풀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섣불리 국회통과가 이뤄질 경우 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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