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삼화제분 모자 간 경영권 다툼서 모친 승소했지만 오너 리스크에 노출?
기사입력| 2015-02-05 09:22:44
58년 전통의 밀가루 기업 삼화제분 오너 일가의 모자(母子) 간의 길고 긴 소송이 끝났다. 삼화제분 박만송 회장(78)의 부인인 정상례씨(76)와 아들인 박원석 삼화제분 대표(46)의 법정 공방이 지난 2일 어머니의 승소로 결론이 났다. 박 회장이 2012년 9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발생한 이 문제는 박 대표가 아버지가 지분을 자신에게 증여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어머니 정씨는 지분 증여를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고 결국 긴 법정 공방 끝에 아들의 주장이 거짓임이 밝혀진 것. 재벌가의 모자 간 재산 다툼에서 어머니의 승리로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심각한 건 박 대표의 향후 거취와 그에 따른 경영 공백, 불법대출 등의 문제들이다. 경영과 상관없는 오너 리스크를 삼화제분이 그대로 떠안게 된 셈이다.
▶박원석 대표, 박만송 회장 쓰러지자 인감 위조해 몰래 지분 빼돌려
삼화제분 창업주인 박만송 회장이 2012년 9월 8일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집안싸움이 시작됐다. 박 회장은 삼화제분의 주식 90.38%를 소유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뇌출혈로 뇌에 큰 손상을 입었고, 결국 병원에서 인지기능 1세 이하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사이 박 사장은 2012년 9월 박 회장 소유의 서울 방이동의 건물을 담보로 한국투자저축은행으로부터 65억원을 대출받았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한자로 박만송 회장의 자필 서명과 인감도장이 찍혀 있는 대출약정서를 가지고 박 회장 소유 건물에 근저당 설정을 했다. 그리고 박 대표는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자신에게 지분을 모두 증여한다는 증여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며 박 회장의 인감도장이 찍혀있는 계약서를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삼화제분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박 대표는 아버지 명의의 삼화제분 157만주(액면가 5000원)와 정수리조트 2만2500주(액면가 1만원), 남한산업 1만2000주(액면가 5000원)의 주주권을 증여받았다고 주장했다.
아들이 아버지 명의와 인감도장이 찍힌 서류들로 지분을 증여받고, 대출을 받는 과정을 지켜보던 어머니 정씨는 박 회장의 특별대리인 자격으로 2013년 7월 한국투자저축은행을 상대로 근저당 말소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렇게 모자간의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이어 정씨는 2013년 10월엔 박 대표를 상대로 주권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정씨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들이 삼화제분 주식 90.38%를 가족 몰래 빼돌리고, 주주총회를 임의로 개최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대표가 한국일보를 인수하려하자, 2013년 12월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박 대표의 대주주 지위나 대표이사 선출 절차가 무효이므로 한국일보 인수 절차 역시 중단돼야 한다'고 탄원서를 냈다. 정씨는 아들이 아버지 박만송 회장의 자필 서명(자서)과 인감도장(인영)을 위조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삼화제분은 한국일보 인수에 결국 실패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박 대표가 제출한 대출약정서의 필적과 인영에 대해 전문 감정기관에 조회 및 확인을 요청했다. 감정기관은 지난해 1월 자서는 위조됐고, 인감도장 역시 가짜라고 법원에 통보했다. 박 대표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난 2일 주권 확인 소송에서도 법원은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박 대표가 부친의 도장을 위조하고 증여계약서를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며, 박 대표의 주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화제분 주주권은 박 회장에게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삼화제분의 끝나지 않은 오너 리스크
우선 어머니 정씨의 승소로 삼화제분 주주권은 다시 병석에 있는 박 회장에게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당장 증여계약서를 바탕으로 박 대표는 삼화제분 대표이사로 취임해 회사를 2년 넘게 경영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박원석씨의 대표 취임 자체가 무효가 돼버렸고, 삼화제분은 하루아침에 경영자가 없어져 버린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병석에 있는 박 회장은 경영에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화제분 경영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 회장의 외아들인 박 대표의 향후 거취도 관심이다.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동안 어머니와 재산 싸움을 벌인 탓에 추후에 삼화제분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향후 발생할 박 회장의 재산 분할 과정에서 두 번째 집안싸움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박 대표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누나, 여동생들과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10년 12월부터 2012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하나은행으로부터 462억원을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대표는 박 회장과 네 딸의 명의로 돼 있는 서울과 경기도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다. 하나은행 대출 서류엔 이들 5명의 도장과 자서가 날인돼 있지만, 정작 박 회장의 둘째딸은 법정에서 대출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박 회장의 사인은 박 대표가, 누나와 여동생 사인은 삼화제분 여직원들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지난해 5월 하나은행을 상대로 근저당 말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출을 해준 하나은행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실제 대출 주체가 박 회장인지, 박 대표가 대출서류를 위조한 것인지, 법원 판결에 따라 하나은행의 대출금 회수의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원이 대출서류를 위조했다고 판단하면 하나은행은 박 대표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 대출금 462억원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당연히 하나은행은 부실대출, 특혜대출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최근 기업 경영 활동 중에서 오너 일가의 행동과 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오너 일가의 개인적 행동에 따라 기업 이미지는 물론 매출과 이익 등 경영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법정 다툼과 재산 싸움이란 사실만으로도 삼화제분에 대한 이미지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오너 일가의 인감도장 위조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삼화제분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는 바닥이 됐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