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포스코, 산업용 가스 헐값 판매…골목상권 침해 논란
기사입력| 2014-05-21 10:03:42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업윤리에 위반하는 의사결정이라면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거대 철강기업인 포스코가 내세운 윤리경영 원칙 중 하나다. 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 후 여러 차례 상생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포스코가 최근 골목상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철강 생산에 사용하다 남은 산업용 가스를 공장 인근의 도매 유통업체에 헐값에 내다 팔아 유통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상생과 공생에 역행하고 있는 포스코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봤다.
▶잉여가스 헐값에 내다팔아 중소 유통업체 사지로 내몰아
철강업체와 가스는 언뜻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철강제조 공정에 다양한 종류의 가스가 사용되고 있다.
제철공정은 크게 제선공정-제강공정-연주공정-압연공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산소는 주로 철광석을 녹이는 열원인 코크스와 석탄연소용으로 사용(제선공정)되며 제강공정에서는 불순물인 탄소와 불순물 제거용으로, 액체 상태의 철이 고체가 되는 연주공정에서는 제품절단과 스카핑용(불꽃 가공의 일종)으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질소는 제강공정에서 전로에 담긴 쇳물의 원활한 혼합을 위해 쓰인다. 또한 아르곤은 질소와 함께 제강공정에서 쇳물을 섞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포스코는 1973년 포항제철소 건설과 함께 첫 번째 산소플랜트를 준공한 이후 지금까지 포항 15기, 광양 16기 등 총 31기의 가스플랜트를 보유하고 있다. 철강 생산을 위해 불가피하게 산업용 가스 생산시설도 보유하고 있는 것. 플랜트들의 총 생산능력은 월 141만4000여t에 달하는 것을 알려졌다. 이중 포항 산소공장이 산소 32만3400t, 질소 29만3800t, 아르곤 1만1300t이며 광양 산소공장이 산소 40만500t, 질소 37만t, 아르곤 1만5280t의 월간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 산업용가스 전문업체의 월간 생산능력은 70기 가량의 플랜트를 모두 합쳐 산소 41만5000t, 질소 85만3000t, 아르곤 3만2200t 등 130만200t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포스코는 각 플랜트에서 생산한 가스들을 사용한 뒤 남은 가스, 일명 잉여가스를 '헐값'으로 시중에 내다팔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수십년간 이같은 잉여가스에 대해 공장 소재지 인근의 일부 도매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수의계약 방식으로 공급해 시장을 교란해 왔다.
이런 이유로 2002년 전국 산업용가스 충전업계가 포항과 광양에서 출하된 저가의 잉여가스로 산업용가스 유통질서가 파괴돼 2000여 충전·판매사업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건의하자 포스코는 공개입찰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여전히 포스코의 잉여가스 공급가격은 시중가의 50~60% 수준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올해 상반기 입찰된 판매물량은 광양과 포항을 합쳐서 1만1900t/월이며 최저가 낙찰가 기준으로 약 11억원/t 규모다.
업계에 따르면 입찰기간별로 물량이 상이하긴 하지만 이를 연간으로 하면 가스판매를 통한 매출은 연간 132억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물론 잉여가스를 판매하는 업체는 포스코 외에도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롯데케미칼 등 철강·화학 관련업체들이 있다. 하지만 동국제강(2360t/월)과 롯데케미칼(950t/월)의 경우 출하가격을 시장유통가격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내놓으면서 유통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또한 전기료·물류비·인건비 등에 의해 매년 5~10%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스전문업체와는 달리 잉여 가스는 외적요인에 의한 가격인상 요인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가스업계는 잉여가스를 저가에 판매하고 있는 포스코 때문에 시장 질서가 혼탁해졌다는 반응이다.
이와 관련, 심승일 한국고압가스협동조합연합회장은 "포스코측이 가스를 과잉생산·유통하면서 영세사업자들은 고사 위기까지 느낄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본의 경우 잉여가스를 중간 유통기업에 넘겨 적정가에 시중에 판매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산업용 가스시장 질서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전문업체가 아닌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가스이다 보니 순도가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할뿐 아니라 공개입찰 과정을 거치면서 시중가보다 저렴한 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시장 교란 논란에 대해 "사실상 상시가 아닌 비정기적으로 매매가 이뤄지고 있고 전체 3조원 규모의 가스시장에서 연간 약 40억원 어치의 가스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만간 동반성장위원회와 함께 업계의 고충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 트러블 났을 때 오히려 웃돈 주고 가스 되사는 해프닝 벌여
한편, 포스코가 잉여가스를 생산·판매하는 과정에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불가항력으로 인한 가스플랜트의 기계적인 트러블이나 액체가스 재고부족 등의 이유로 포스코도 외부로부터 산업용가스를 웃돈을 주고 구매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포스코는 약 6050t의 산업용가스를 구매하면서 약 27억원을 지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창원소재 포스코특수강 등 직·간접 계열사의 산업용가스 외부 구입량도 수 천t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포스코는 똑같은 물건을 사고 파는 상황임에도 팔 때는 50% 할인판매, 살 때는 웃돈을 주고 되사는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 19일 기존 경영 방침을 수정한 신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권오준 회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기업설명회를 열고 경영 비전을 제시했다.
포스코는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원천소재와 에너지 등 2대 영역에서 신성장동력을 삼는 전략을 세웠다. 원천 소재 산업은 리튬과 니켈 분야를, 에너지 산업은 연료전지와 청정 석탄 사업을 주력 후보로 선정했다. 또한 권 회장은 2016년 단독 기준으로는 매출 32조원, 영업이익 3조원(영업이익률 9%대)을 실현하고 연결기준으로는 매출 78조원, 영업이익 5조원(영업이익률 6%대)을 기록하며, 부채액을 23조5000억원까지 낮추겠다는 목표치를 세웠다. 아울러 경영 전략도 '소유와 경쟁'이 아닌 '연계와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하지만 권 회장과 포스코는 상생의 목표를 실현하기에 앞서 소규모 영세사업자들의 외침에 귀부터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 장종호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