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연이은 사고, 포스코 한국병. 안 고치나 못 고치나
기사입력| 2014-05-14 09:43:29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 안전 불감증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아픈 지적을 받아왔지만 이번만은 '잊지 않고 꼭 바꾸겠다'는 다짐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전사고에 대한 근본 인식도 바뀌고 있다. '설마'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되새긴다는 의미다.
지난 9일 글로벌 철강기업 포스코에서 또 폭발사고가 났다. 새벽에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가스배관 밸브교체작업을 하던 중 가스누출로 폭발이 일어났다. 설비를 맡고 있는 포스코건설 하청업체 근로자 5명이 다쳤다. 1명은 골절상을 입었고, 4명은 부상이 경미해 치료 뒤 귀가했다.
제철소 사업장이 사고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긴 해도 최근 포스코 사고는 꽤 잦다. 세계가 인정하는 'No1 제철소'답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사후 대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매뉴얼을 보면 사고를 바라보는 포스코의 자세와 향후 재발방지 의지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초 두 차례 사고 모두 포스코는 소방서와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다. 차후 당국에서 사고발생을 인지하자 마지못해 통보한 식이었다.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고여서 내부 방재시스템을 가동, 진화와 수습을 했다는 것이 포스코의 설명이다.
하지만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에 대한 처리도 미숙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포스코건설 하도급 업체 직원 2명이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진채 발견됐다. 사망사고는 경찰이 수습할 때까지 현장을 보존해야하지만 포스코는 현장 상황의 시급함을 들어 사고자를 먼저 옮겼다. 당시 같은 날 다른 사업장에서도 사망사고가 있었다. 포항제철소내 포스코켐텍 공장에서 난간 확장 용접작업 중 하도급업체 직원이 6m 바닥 아내로 떨어져 숨졌다. 포스코는 시신 수습 뒤에야 경찰에 사고사실을 알렸다.
▶잦은 사고, 내부 시스템 정비해야
포스코는 지난해 대형 산재사고만 5차례 일어났다. 12월 사망사고 외에도 지난해 7월 고로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 공장부근 건물과 인근 주택 유리창이 깨져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큰 화재도 났다. 제철소는 불과 뜨거운 쇳물을 다루다 보니 화재사고가 많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도 올초 포스코내 설비 상당부분을 맡고 있는 포스코건설과 관련 하도급업체에 대한 특별 안전감독을 벌여 안전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사망사고에 대한 후속조치였다. 당시 안전장비 미착용 등 378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 2700만원의 과태료를 포스코건설과 17개 하도급업체에 부과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적극적인 현장 관리감독과 안전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관련법을 엄중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허나 달라진 것은 없다. 아쉬운 점은 당시 재발방지 규정 마련에 실패한 것과 정부당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포스코의 의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의 원성도 높다. 포스코가 원가절감을 위해 안전비용을 삭감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초 포항환경운동연합은 "포스코를 중대재해 관련 안전관리위기사업장으로 지정해 달라"는 성명서도 냈다. 이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포스코가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사후처리 등이 미흡해 더 큰 사고발생 가능성을 키운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 9일 사고에 대한 포스코의 인식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는 자체 방재과를 운영하고 있다. 사고가 크지 않았다. 회사 내부 소방차 출동은 3분이 걸리고 소방서에서 출동하면 15분이 걸린다. 신고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최근 잦은 사고에 대해선 "빈도수가 많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면서 "고로 자체가 워낙 설비가 복잡하고 화재 위험성이 상존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인식은 사고근절에 도움이 안 된다. 사고를 미리 예방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일어난 뒤에는 공론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스코 공장이 주택가와는 일정부분 떨어져 있지만 큰 화재와 폭발, 유해한 가스에 노출돼 있다. 소방서에도 알리지 않고 자체 진화와 수습을 하다보면 외부 사람들은 사고를 인지하기 힘들다. 자칫 잘못하면 대피시기를 놓쳐 2차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일단 관할 소방서와 경찰서에 사고 사실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대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쉬쉬하고 넘어가다보면 사고와 피해 정도를 축소할 여지도 생긴다. 현재와 같이 고립된 시스템이면 같은 사고가 반복되기 십상이다.
▶기본 망각하면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는 사상누각
지난 3월 포스코 8대 수장에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포스코의 경쟁력을 역설했다. 임직원들에게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 재건을 강조했다. 자동차 강판, 에너지 강재 등 핵심제품에서 글로벌 정상기업의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포스코는 세계 철강산업 위축에도 톱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철강 경쟁력 4년 연속 세계 1위, 포춘지가 선정한 존경받는 기업 금속부문 1위 등이 외부 평가다. 실적 부진과 중국 철강업계의 과잉생산 등 국제 환경은 좋지 않지만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권 회장은 지난 8일 출국, 동남아 사업장을 격려방문하고 있다. 14일 귀국할 예정이다.
권오준 회장은 내실 다지기를 취임 화두로 던졌지만 포스코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이 담보되지 않고선 큰 목표로 매진할 수 없다. 기본이 흔들리면 차후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세계 시장에서의 선도적인 위치를 잃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만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숨기고 싶은 사고'를 단순 실수와 생산성과의 무관함을 내세워 덮질 말아야 한다.
포항 지역사회와 국가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내세워 포스코는 수십 년간 견제 받지 않는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위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일방통행만 계속한 결과는 끊이질 않는 인재(人災)다.
포스코 공장 설비를 담당하고 있는 포스코건설과 복잡한 하청업체간의 업무효율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 인근 주민들은 큰 소리만 나도 폭발사고를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이들을 위한 안전장치와 매뉴얼을 세심하게 챙기는 것도 일류기업의 몫이다.
최근 현빈의 복귀작인 영화 '역린'에 나오는 중용 23장이 화제다. '작은 일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중략)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위대한 것을 만드는 '작은 일'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명언이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박재호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