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개운치 않은 실적주의
기사입력| 2014-04-30 09:34:44
현대그룹은 요즘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다.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구조조정 등 고강도 자구책을 실행중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교체되기도 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분위기 쇄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전사적인 허리띠 졸라매기 분위기에 반해 현 회장과 그의 딸은 실적이 애매한 계열사를 통해 거액 배당금을 챙긴 것이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중책을 맡은 수장으로서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행보라는 지적이다.
▶그룹은 최대 규모 구조조정하는데…
현대그룹은 지난해 12월 금융계열사 3개사를 매각하는 등 고강도 자구책을 발표했다. 당시 시장에서 제기된 유동성 문제를 해소할 방침으로 현대증권,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를 모두 매각해 금융업에서 철수한다는 내용이다. 현대그룹은 우선 금융 계열사 매각으로 7000억∼1조원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여기에 계열사와 자산 처분에도 박차를 가한다고 했다. 사업부문 구조조정에서는 현대상선 항만터미널 사업 매각 등으로 1조5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국내외 부동산, 유가증권, 선박 등 자산 매각을 통해서도 4800억원의 여유를 갖겠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자기자본 확충,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 매각으로 6600억원 이상 조달할 계획이다. 이같은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되는 자금은 총 3조3000억원 가량에 달한다. 여기에 현대그룹은 현대아산 등 다른 계열사에 대해서도 내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중이다. 현대그룹이 이 같은 자구책을 마련한 것은 당장 현금보유 사정이 절박해서가 아니다. 그룹 규모로 볼 때 자구책이 없어도 현금보유 능력이 올 상반기까지 충분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현대그룹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현대그룹은 비장하다.
▶'실적이 중요' 계열사 사장까지 줄줄이 교체
현 회장은 올들어 계속해서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고강도 자구책에 그치지 않고 CEO 교체라는 승부수까지 꺼내 들었다. 이로 인해 그룹 산하 비금융권 계열사 사장들이 줄줄이 교체됐다. 현대상선, 현대아산,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사태풍 속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살아남은 계열사는 현대엘리베이터다. 현대그룹이 현 회장 코드에 맞춰온 계열사 CEO를 대거 교체한 배경에는 '실적'이 있었다. 현대그룹 직원들은 "작년에 실적이 좋지 않았던 계열사 사장들은 거의 다 바뀌었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실적이 워낙 좋아서 칼날을 피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8조1526억원, 영업적자 3302억원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지난 3월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현대상선의 장기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단기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말 취임한 신임 이석동 사장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흑자전환이었다고 한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매출액이 1조66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6.4%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100% 늘어난 986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같은 자신감으로 올해 매출액을 2013년 목표(9800억원)보다 12% 상향해 1조1000억원으로 잡기도 했다. CEO 교체 카드에서 엄격하게 실적주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적'을 강조한 오너 일가는 글쎄…
현 회장은 CEO 교체에 대해 "분위기 쇄신"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룹 오너는 자신에게 채찍을 들었는지 의문이 든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비상장회사인 현대유엔아이가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보였는데도 거액의 배당금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공시된 현대유엔아이의 201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은 2012년 1261억원에서 지난해 1434억원으로 적잖이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3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던 것이 지난해에는 순손실 91억원으로 돌아섰다. 현 회장과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사장실장은 각각 12억원과 2억원을 배당받았다. 현 회장 모녀는 현대유엔아이에 대해 각각 52.3%, 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된 현대유엔아이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시스템통합 업무를 하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영업이익이 75억원 가량 발생했다. 당기순손실은 현대상선 지분 주가 하락 등 지분법 평가에 따른 장부상의 손실에 불과하다"면서 "그동안 이익잉여금 70여억원도 있었기 때문에 배당에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을 다른 계열사에 적용해 보면 개운치 않다. 같은 계열사인 현대경제연구원의 2013년 손익계산서를 보면 1634만원의 영업이익에, 1억9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유엔아이와 비슷한 경우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지난해 32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현대유엔아이처럼 지분법 손실 등으로 인해 765억원의 장부상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두 계열사의 CEO는 모두 교체됐다. 한 재무전문가는 "목적사업에서 이익을 낸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사업 외 투자도 경영행위에 속한다고 보면 당기순손실을 일으킨 경영실적이 좋다고만 볼 수 없다"면서 "특히 비상장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서 생긴 이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변의 곱지않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