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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LG 백색가전마저 밀려 '혁신' 강조 부작용 가능성 대두

기사입력| 2014-04-01 18:33:01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지 20년이 흘렀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내 굴지의 경영자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최근 '위기론'을 꺼냈다. 혁신만이 살 길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비슷했던 규모의 삼성전자에 뒤처지기 시작했고,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LG전자의 백색가전 사업 실적도 예전만 못하다. 업계 일각에선 백색가전 사업의 성장세가 다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LG그룹은 최근 경영문화의 선두에 '혁신'을 내세우고 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혁신병'이라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구 회장 "향후 경영상황은 위기 자체" 강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그룹 임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자주 꺼내는 단어는 '위기'다. 1등 LG를 외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LG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상황이 녹록지 않다. 스마트폰 사업의 부실은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적부진은 여전하다. 지난해 4분기에는 43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도 반전은 어려울 것이란 게 증권가의 반응이다. 게다가 믿고 있던 백색가전마저 상황이 좋지 않다.

TV와 백색가전은 그동안 LG전자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명품'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TV와 백색가전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TV와 모니터 등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의 2013년 매출은 21조151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5.3%감소했다. 영업이익은 4048억원으로 13.4%가 줄었다. LG전자는 세계 TV 시장에서 15%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지난해 과다한 마케팅 비용 지출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그나마 위안은 냉장고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전통적인 백색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Home Appliance) 사업부가 2013년 매출 11조800억원, 영업이익 4160억원 가량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매출이 전년대비 소폭 상승했기 때문. 다만 영업이익이 20%이상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률도 5%의 내부 목표에 턱없이 부족한 2.9%를 기록했다. 과거 '백색가전은 LG'로 여겨졌던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LG전자의 TV와 백색가전 수익성 감소는 LG전자 뿐 아니라 LG그룹의 위기로 직결된다.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던 만큼 자금 마련이 힘들어 미래성장동력 발굴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 수익이 줄어 신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힘들고, 기술경쟁력에서 뒤처질 경우 수익은 더욱 줄어든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TV, 백색가전의 성장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으로 확보된 여유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하거나 기술연구개발비로 사용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1월 브랜드가치평가지수'를 살펴보면 TV와 백색가전 분야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브랜드가치 1위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제품군은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이다. 과거 1위를 차지하던 LG전자의 백색가전을 모두 넘어선 것이다. 브래드스탁에 따르면 2008년 TV와 냉장고는 삼성 브랜드인 파브와 지펠, 세탁기와 에어컨은 LG 브랜드인 트롬과 휘센이 각각 1위에 오르며 생활가전 시장을 양분했다.

그러나 2012년 삼성전자가 에어컨 부문에서 LG를 앞서기 시작한 이후 주요 4개 생활가전 부문에서 삼성전자 브랜드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며 "혁신적 기술 개발 등 IT 첨단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도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위기론'이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혁신 강조 속 부작용 가능성 제기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위기론의 중심에는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LG그룹의 사업 분야는 각 시장에서 2~3위권에 대거 머물러 있다. 시장을 선도하기보다 따라가는 입장이다. 그룹 최고 경영진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1등 LG'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LG 계열사들은 제품을 출시할 때면 최고,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지난 몇 년간 1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1등을 위해 최초, 최대만을 앞세우다 보니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례로 LG전자는 과거 울트라북 '엑스노트 Z330' 출시하며 이색 보도자료를 냈다. 부팅 속도가 9.9초, 한국기네스 기록원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네스가 인정한 울트라북이란 이미지 강조를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기네스 기록원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LG전자가 기록 인증을 의뢰한 곳은 한국 기록원이다. 세계기네스협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체였다. LG계열사들은 이밖에도 1등 탈환을 위해 펼친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수차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물론 아직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단순 혁신을 내세우며 1등을 추구했다면 현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선도를 목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 공식석상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공식석상에 자주 등장해 경영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기술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하며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분명 있다. '인화'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경영문화를 한번에 '성과주의'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특히 혁신을 바탕으로 한 성과주의를 강조하다보면 실적이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사업군에 집중, 신성장동력 마련 등의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1980년대 후반 TV를 바탕으로 세계 전자산업을 주름잡던 소니와 세계 최초의 디카를 개발했던 코닥은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둬왔지만 새로운 사업보다 안정된 사업구조만을 고집,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를 읽지 못해 후발경쟁업체에게도 뒤쳐지는 실패를 맛봤다.

혁신을 내세우며 '성과주의'와 '인센티브'를 도입해 기업문화 체질개선에 나선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회장의 이 같은 행보가 LG그룹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모이는 요즘이다.

김세형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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