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돌아온 '주총 시즌' 뚜껑 열어보니…오너일가 몸사리기 한창
기사입력| 2013-03-28 17:57:07
대기업의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 등 10대 기업이 15일 주총을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 주총은 짧아진 시간, 소액주주나 시민단체의 반대의견이 가장 적은 해가 될 전망이다.
주총 안건으로 오너일가 관련 내용을 대부분 생략했기 때문.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경영 2·3세의 승진을 시작으로 경영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은 달랐다. 오너일가의 경우 경영책임이 있는 등기이사, 사내이사의 등재 안건은 없었다. 대부분 기업은 책임경영도 좋지만 전문가 영입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일가의 책임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지배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최근 정치권 동향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내건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경영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대기업 총수 일가 범죄에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 행사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사내이사가 되면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에 참여하는데 따른 법적 지위와 책임은 높아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분이 있는 인사와 정관계 인사 영입을 통해 '원격 경영', '전관예우' 등 안전장치 마련에 분주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해 대기업 주총 안건을 보면 정관계인사의 사내이사 등재 안건이 눈에 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소장 김선웅)의 2013 대기업 주총 의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대기업이 법조계 인사, 오너일가와 친분이 있는 인사의 사내이사 등재 안건을 상정했다. 회사경영과 외부 위기관리를 관리하기 위한 최적의 조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총 안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내이사 등재를 포함하지 않았다. 사내이사 등재를 놓고 올 초부터 고민을 했지만 최종 조율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의 주총 안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시외이사 선임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3대 검찰총장을 지낸 송 전 총장은 재직 기간 중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의혹 수사와 대선 비자금 수사의 최고 책임자 위치에 있던 터라 사외이사 영입 자체가 부적절하다 평가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송 후보는 현재 김&장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김&장법률사무소는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에 대해 제기한 OLED관련 특허소송에서 LG디스플레이를 대리하고 있다. 주요소송에서 소송 상대방을 변호하는 입장에 있는 김&장법률사무소 소속의 인사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선임은 논란거리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사임한다. 신세계 측은 "최근 검찰 조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권한은 유지하되 법적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신세계는 김군선 신세계 부사장의 사내이사 등재를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김 부사장은 현재 광주신세계의 등기이사(비상근)로 2013년 재선임을 위해 광주신세계의 이사후보로 상정된 상태다. 광주 신세계의 최대주주가 정 부회장이란 점을 감안하면 측근의 전진 배치를 통해 지배력 확대를 꾀할 수 있는 구조다.
신세계는 또 손영래 전 국세청장을 사외이사 후보로 상정할 것으로 전해진다. 손 후보는 2007년 직권남용 등으로 징역 2년에 집유 3년 등의 선고를 받았다. 그해 사면됐다. 과거 불법행위의 전력이 있는 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기 충분하다.
대림산업은 신세계와 비슷한 모습이다. 오너일가 관련 안건은 없다. 대신 사외이사 등재와 관련 오수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 신정식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를 후보로 안건으로 상정했다. 안건이 통과될 경우 두 교수 모두 9~10년 이상 사외이사로 활동하게 된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장기간 사외이사 활동의 경우 대주주와 경영진으로 부터 독립성 유지가 힘들다"고 밝혔다.
SK C&C는 주총을 앞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을 올렸다. SK C&C 측은 "최대주주로서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최 회장의 자격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책임경영차원이 아닌 법적 구속으로 인한 약해진 지배력의 강화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인 최 회장이 이사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많은 투자자들이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어 올해 주총 가운데 가장 논란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대주주와 오너일가의 책임경영은 투자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투자 요소다.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책임은 회피 하고 권리만 강화할 경우 성장성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오너일가의 책임경영 의지가 올 시즌 대기업 주총의 관전 포인트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