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 구자용 회장. <연합뉴스>
'공정거래'의 반대말은 '뒷거래'다. 대표적인 것이 담합, 이른바 '짬짜미'다. 기업 경쟁력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니편, 내편'으로 나뉘어 소비자를 속이면 큰 돈을 벌수 있다. 생산자의 횡포는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 15일 법원이 LPG(액화석유가스) 수입업체 E1의 판매가격 담합 사실을 인정,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LPG 판매 가격을 담합한 혐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E1에 대해 "과점인 LPG 시장에서 수입업체인 E1과 SK가스는 영업 기밀인 가격 정보를 수시로 교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담합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09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E1, SK가스, GS칼텍스, 에스오일 등 국내 6개 LPG업체의 담합 사실을 적발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이들 업체는 72회에 걸쳐 가격 정보를 교환했다. 이를 통해 이들 업체는 매년 수백억원의 부당 이익을 취득했다. 공정위는 총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이중 E1은 18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후 LPG 업체들은 과징금 취소 소송을 냈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 와중에 E1은 공정위로부터 검찰 고발까지 당했고, 이번에 법원 판결을 받았다.
법원 판결 이후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포털 사이트와 금융관련 커뮤니티에선 징벌적 재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과징금을 이미 받았다고는 하지만 관련자 징계 없이 피해액 수천억원에 벌금 2억원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얘기다.
E1 관계자는 "법원 선고는 받았지만 판결문을 아직 받지 못했다. 이를 검토한 뒤 항소 등 이후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벌금 2억원이 적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최대 벌금액이 2억원이다. 공정위에서 당시 법인만 고발조치했기 때문에 이번 판결에 임직원 처벌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담합은 시장경제 '공공의 적'이다. 담합 과징금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매출의 10%까지 부과할 수 있지만 평균 사례를 보면 2% 정도에 그치고 있다. OECD 기준으로 보면 기업들의 부당 담합 이익이 최대 20%라는 보고서도 있다. 과징금의 대폭적 상향이 필요하다. 벌금 역시 담합 방지 차원에서 징벌적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담합에 엄격한 미국의 경우 부당이익의 두배, 소비자 피해액의 두배까지 벌금을 매기고 있다. 관련자는 최고 10년형까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담합 사건의 소비자 피해액에 대해 공정위 과징금은 약 12%에 불과했다는 2010년 경실련 조사 결과가 있다. E1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담합을 통해 1㎏당 평균 마진을 11원에서 33원으로 3배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에만 추가로 259억원을 더 챙겼다.
E1은 과점의 이점을 십분 활용, 22% 내외의 LPG 시장 점유율로 매년 성장세다. 2011년에는 매출이 7조원이 넘었다. 영업이익도 1200억원에 달했다. E1은 2009년 과징금의 분할 납입이 허용돼 1894억원 중 600억원 가량을 납부한 상태다.
여전히 E1은 담합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항소할 경우 상급 법원의 최종판단도 봐야 한다. 하지만 담합 의심 당시 LPG 충전소간 판매 가격이 평균 2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눈가리고 아웅'이라며 콧웃음 친다.
E1 구자용 회장은 지난해말 한국자원경제학회로부터 에너지산업대상을 받았다. 안정적으로 LPG를 공급하고 무재해 28년을 달성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담합과 정도경영은 거리가 멀다. 구 회장은 담합이 극성을 부리던 2000년대 중후반 LG칼텍스 가스 기획, 재경담당 부사장을 거쳐 E1 부사장, E1 대표이사 사장 등 회사 경영을 총괄한 바 있다. 에너지원 수입, 판매회사에서 가격 결정은 가장 원론적인 경영활동이다.
담합 의혹을 받고, 과징금을 내고, 법원으로부터 선고를 받았지만 LPG 담합 사태 관련자 중 그 누구도 소비자들에게 사과한 적은 없다. 기가찰 노릇이다. 심지어 담합을 인정하며 공정위 조사에 협력, 과징금을 감면받은 SK가스조차 최대 피해자인 소비자에 대한 사과를 외면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